변평섭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
[특별기고]


북한 현송월이 대한민국 심장부를 휩쓸고 다니는 동안, 우리의 22세 젊은이가 조국의 국위를 세계에 떨치는 경사가 있었다. 정현 선수가 호주 오픈 남자단식 테니스경기에서 세계 랭킹1위의 전설적인 영웅이던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하고 이어 지난 24일에는 4강에 진출한 것이다. 우리 선수가 이처럼 메이져 대회에서 8강, 4강에 진출한 것도 처음. 4강 진출로 상금 7억5000만원(호주달러 88만불)을 확보하고 26일 준결승에서는 아쉽게도 기권패를 하고 말았지만 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영웅이 되었다.

연일 북한 핵위기의 뉴스가 끊이지 않던 미국 CNN은 정현선수가 코트를 누비는 역동적인 모습, 심지어 그가 코트에서 관객석의 부모님을 향해 한국식 큰절 하는 모습을 반복하여 내보냈다. 모처럼 세계를 놀라게한 신선한 한국 뉴스였다. 어떤 중국계 언론은 '중국에는 만리장성이 있고 한국에는 정현이 있다'고 까지 극찬했으며, 정현의 세련되고 유머스런 인터뷰를 두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외교관급'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특히 국내 언론들은 정현선수가 실의에 빠진 우리 젊은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으며, 역시 어둡기만한 우리 정치권에는 뜨거운 각성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정현 선수가 보여준 그 당당함과 해맑은 미소, 유머, 그리고 신선함이 정치권에서는 맛보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현 신드롬'의 감동이 일과성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마침 정현 선수가 테니스의 황제라는 로저 페더러와 준결승을 치르다 발바닥 물집으로 더 버티질 못하고 기권했을 때, 그 긴박한 순간을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이 오버랩 되면서 정현 선수의 모습은 SNS상에서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시작되는 평창올림픽이 또 쓰나미처럼 정현 선수를 망각의 늪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 물론 우리 대한민국팀이 단체나 개인종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정현 선수의 신드롬을 일시 잠재우는 것이야 정말 바라는 바다.

크로스컨트리스키, 스키점프, 피겨스케이팅, 봅슬레이, 쇼트트랙 등등… (물론 여자아이스하키처럼 남북한 단일팀의 경우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가 나부낄테고 '대한민국!' 함성 대신 '코레아'를 외쳐야겠지만) 그러나 올림픽 경기 외적인 것, 말하자면 금강산에서의 전야제, 북한 예술단의 서울공연, 북한의 태권도시범, 북한 응원단 율동… 이런 것이 TV화면을 온통 장식하면 우리 머릿속에 애써 자리잡았던 '정현 신드롬'도 몇 년에 걸쳐 애써 준비한 평창올림픽도 가라앉고 말 것 아닐까?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안보의식, 특히 북한 핵 위협까지도 잊혀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된다. 그래서'평창올림픽'이'평양올림픽'이 되는 것은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인데 걱정이 아닐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리켜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어버리는'냄비기질'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너무나 대형 사건들이 쉴새 없이 터져 나오다 보니 '망각의 증세'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대형 쓰나미가 몰려와도 정현 선수가 보여준 그 투지와 순수한 열정, 어두움속에서도 빛을 찾는 대한민국 젊은이의 정신만은 계속 살려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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