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돈을 가졌지만…리들리 스콧 영화 '올 더 머니'

억만장자 게티 손자 유괴 사건 실화를 스크린으로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셀 수도 없이 많은 돈을 가진 억만장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졌다고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에게 사랑하는 손자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이 억만장자는 손자를 사랑하지만, 유괴범들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 있는 'J. 폴 게티 박물관'으로 유명한 인물 J. 폴 게티의 이야기다. 197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게티의 손자 유괴 사건을 할리우드의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화화했다.

한국에 개봉되는 제목은 '올 더 머니'이지만, 영화의 원제는 '올 더 머니 인 더 월드(All The Money In The World; 세상의 모든 돈)'이다. 사막에서 유전을 발굴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스스로 "세상의 모든 돈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지만, 쓸데없는 돈은 단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진 그는 자신의 손자가 유괴범들에게 납치됐단 얘기를 듣는 순간에도 조금의 미동 없이 세계 유가 변동을 확인하고 있다.


그에 맞서 돈을 달라고 싸우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유괴범이 아니라 유괴된 소년의 엄마이자 게티의 며느리인 '게일'(미셸 윌리엄스)이다. 재벌 2세인 남편이 마약에 빠져 폐인이 되자 위자료 한 푼 없이 이혼하면서 아이들의 양육권만을 쟁취한 게일은 매달 받는 양육비 외에는 돈이 없다. 그녀는 돈을 달라고 애걸하러 게티를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대신 게티의 지시를 받은 CIA 요원 출신 협상가 '플레처'(마크 월버그)를 만나게 된다.

게티는 유괴범들에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자신의 모든 가족이 유괴 대상이 될 것이라며 플레처에게 유괴범들과 협상을 해 손자를 빼내오라는 지시를 한다.

그러나 플레처는 잘못된 정보로 손자가 벌인 자작극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게티에게 보고하고, 이후 손자는 다른 악당들에게 팔려 더 큰 위험에 처한다. 시간이 흐르며 범인들이 요구하는 몸값은 점점 더 낮아지지만, 게티는 전혀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몸이 단 유괴범들은 급기야 손자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겠다고 협박한다.

영화에서 잔인한 유괴범들보다 더 냉혹하게 그려지는 것은 세계 최고 부자인 게티다. 그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며 미술품, 조각상 같은 것들에만 돈을 쓴다. 그가 돈가방을 여는 순간은 손자의 몸값을 줄 때가 아니라 값비싼 그림 한 점을 살 때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이야기는 현대판 비극이며, 동시에 매우 철학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돈이 많은 것과 없는 것, 그 사이의 공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에이리언'을 비롯해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 '한니발', '프로메테우스', '마션' 등을 만든 스콧 감독의 연출력은 이 영화에서도 역시 빛난다.

실화를 다룬 책을 바탕으로 하긴 했지만, 몇몇 장면은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극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유괴된 소년이 탈출을 시도하던 중 수상한 차에 타는 장면이라든지, 게티가 누군가와 만나 그림을 사는 장면, 영화 막바지에 소년이 살기 위해 처절하게 달리는 모습과 게티가 텅 빈 복도를 휘청휘청 걸어가는 장면의 극적인 대비 같은 것들이다.

이 영화는 제작 중 한 번의 큰 고비를 맞았는데, 원래 게티 역을 맡아 촬영한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할리우드의 '미투' 성폭력 고발로 퇴출당하는 바람에 영화 개봉 6주를 남겨두고 그의 촬영분량을 통째로 날린 것이다. 급히 섭외된 배우가 70년 연기 경력의 원로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 하지만 이런 배경이 무색하게, 영화를 보면 플러머의 연기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절제된 연기로 폭발 직전의 감정을 보여준 미셸 윌리엄스와 제 몫을 톡톡히 한 마크 월버그의 연기도 좋다.

2월 1일 개봉.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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