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순직 교사 9명 안장, ‘미수습’ 양교사는 유품 묻어
가족들 연신 이름부르며 오열, 생존학생 찾아 희생 뜻 기려

▲ 16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세월호 순직 교사 합동 안장식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며 허토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해봉아… 얼마나 추웠어. 손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보냈네… 우리 해봉아…”

16일 오후 1시50분경 국립대전현충원 순직공무원 묘역에는 9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졌다. 비석에는 모두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순직’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날 세월호에서 제자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9명의 교사가 현충원에 안장됐다. 줄 가장 왼쪽에는 지난해 11월 이곳에 먼저 안장된 고창석 교사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전국의 여러 추모공원에 산재해있던 순직 단원고 교사들은 3년 9개월만에 한 곳에 모여 영면에 들어갔다. 현충원은 이들을 더 기다리게 할 수 없다며 안장식 역사상 처음으로 교체용 목비 대신 석비로 단장했다.

합동안장식이 있던 이날 순직한 이해봉 교사의 어머니인 서옥자(72) 씨는 연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사고 당시 서른 두 살이었던 이 씨는 난간에 매달린 학생 10여명을 탈출시키고 또 다시 제자들을 구하려 선실에 들어갔다가 사망했다.

사고장소에 늦게 도착해 아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보냈던 미안한 마음에 어머니는 이날 입원 중이던 병원을 나와 아들을 찾았다.

서 씨는 “모든 사람이 아들을 좋아했다. 꼭 한 번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한스럽다. 이제 여기서 아무 걱정없이 편히 쉬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수영 교사(당시 25세)의 어머니 최숙란 씨는 영현 위로 묵묵히 흙을 뿌리고 있었다. 전 씨도 학생들 구명조끼와 안전을 챙기느라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머니가 보여준 생전 전 씨가 가지고 다니던 교무수첩 제일 앞장에는 ‘항상 학생을 생각하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적혀있었다.

전 씨는 4월 15일 사고당일 오전까지 교무수첩에 “수학여행 당일인데도 분위기가 좋음. 발표를 많이함”이라고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해놨었다.

어머니 최 씨는 “초임이어서 가르치던 제자들 졸업하는 것까지 꼭 보고싶다고 했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이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생존학생인 양모 양도 오랜만에 스승인 양승진 교사를 찾아왔다. 미수습자 중 한 명인 양 교사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해 유족은 집에서 가져온 고인의 머리카락과 유품을 대신 안장했다.

양모 양은 “늘 칠판 빽빽히 필기를 하고 교문앞에서는 흰 목장갑을 끼고 교통지킴이를 했던 선생님 모습이 기억난다. 선생님이 수학여행 가기 전에 같이 고기 구워 먹자고 했었는데 결국 못했다. 좋은 곳에 안장되셨지만 그래도 살아계신 선생님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현충원은 마지막까지 아이들과 함께한 선생님들의 고귀한 희생을 받들어 이곳을 사제지간 정을 상기하는 교육의 장소로 만들 계획이다.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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