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공주대학교 교수
[수요광장]


요즘 한국사회는 적폐(積幣)논란으로 시끄럽다. 적폐는 관행에서 비롯된 해묵은 잘못들이 고쳐지지 않고 겹겹이 쌓인 것을 말한다. 문제는 그 잘못된 관행들이 왜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았는가?라는 점이다. 그것은 역대 정권들이 제도개혁을 하지 않고 불법과 비리에 연루된 전 정권 인사 몇 명을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대중들의 카타르시스를 충족시켜주는데 국한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작업은 이전과 달리 고강도로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적폐청산작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적폐청산작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내로남불'의 블랙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현 정부가 또 다른 적폐논란에 휩싸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일을 보면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무리한 개헌추진, 국가정보원의 무력화, 경륜부재의 국제외교, 탈원전, 친노동·반기업정책, 최저임금제, 복지포플리즘이 그것이다. 조만간 여러 폐해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미 최저임금제의 부작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결국 이런 폐해들의 증폭이 현 정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정권의 성패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국정운영자들의 직격(職格)수준이다. 직격은 건전한 역사관과 상식에 기초한 국정운영, 국민을 위한 소리없는 헌신을 말한다. 우선 대통령의 역사관부터 염려스럽다. 대통령은 지난해 UN총회연설에서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규정했다. 한국전쟁은 '북한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일으킨 남침전쟁'이 팩트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역사를 정면으로 왜곡했다. 그의 연설을 들은 UN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북핵위기국면에서 국정운영자들의 퇴행적인 역사관이 자칫 한미동맹과 한일공조체제에 파열음을 일으킬 수 있다. 만의 하나 북핵위기관리의 실패로 국가적 재앙이 발생할 경우, 현 정부는 전 정권보다 훨씬 더 무서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셋째,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의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제도개혁으로 끝장을 봐야 한다. 제도개혁은 국가 백년대계와 미래 세대들에게 조금도 부끄럽지 않도록 국가정책의 근간을 재설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전, 전전 정권의 과거 파기에만 몰두할 뿐, 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또 세월호 침몰을 십분 활용해서 집권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 발생한 여러 사고들을 보면 전 정권과 무엇이 다른지, 어떤 제도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통령이 사건현장에 빨리 달려가서 유족들과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제도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쇼통일 뿐이다. 정치·경제·사회복지제도 역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하에서 국민들이 감당할 정도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경험했던 '잃어버린 20년의 비극'이 언제든지 우리에게 재현될 수 있다.

어느 정권이든 그 속성은 권불오년의 셋방살이에 불과하다. 권도(權道)에 따른 급진적 개혁보다는 이성과 통합에 기초한 점진적 개혁으로 그간의 적폐를 몇 개만이라도 제대로 고쳤으면 한다. 과욕을 버리고 겸손하게 일하는 것, 그것이 일 잘하는 정부의 진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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