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에서 들려준 글 묶어 책 펴내

쉼표 뒤 한 걸음 딛게 하는 에세이 '생각 라테'

tbs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에서 들려준 글 묶어 책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올해도 누군가와 한 상에 앉아 말과 음식을 나누겠지요. 요리에 관한 말은 요란해도 정성 어린 밥상은 줄어든 세상, '사랑한다'는 말은 넘쳐도 '사랑'은 줄어든 세상. 말은 줄이고 정성 들인 음식을 대접해야겠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올해의 소망입니다."

이 글은 김흥숙 작가의 에세이집 '생각 라테'(서울셀렉션)에 담긴 첫 번째 글 '한 해 소망'의 일부다. '생각 라테'는 전직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작가가 2012년 봄부터 2017년 가을까지 6년 가까이 tbs 라디오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를 진행하며 직접 써서 소개한 글 183편을 묶은 책이다.

각각의 짧은 글들은 1월부터 12월까지 일기 형식으로 정리됐다. 작가는 새해 첫날 지난해의 달력을 떼어내며 여러 사람과 마주한 밥상을 떠올리고 올 한 해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정성 들인 음식을 나눠야겠다는 다짐을 새해 소망으로 빌어본다. 이 책의 글들은 작가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지난날과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올곧은 자리로 한 걸음 내디디려는 자기 수양의 노력이, 그렇게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진솔하게 들여다보고 생각의 전환을 제안하는 글들은 독자에게 공감과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1월 3일 '새 달력을 걸며' 하는 결심을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새 달력을 걸며 결심합니다. '더 많이 사랑해야지. 아니, 아무도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도 똑같은 결심을 했습니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은 건 저 같은 사람이 많아서이겠지요? 다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저 자신과 싸워야겠습니다. 올해엔 꼭 목표를 이루고 싶습니다. 저를 바꿔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새 달력을 걸며' 중)

'짬뽕을 시킬걸'이라는 글은 중국집에서 하는 흔한 고민 '짬뽕이냐 짜장이냐'를 두고 생각의 차원을 사회적으로 넓힌 지점이 돋보인다.

"때로는 상황이 선택을 도와줍니다. 감기 든 사람은 짜장면보다 짬뽕을 찾습니다. 매콤한 국물이 땀을 내게 하여 열을 내려주니까요. 해고노동자들이 높은 망루에 올라가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도 상황 때문입니다. 상황은 선택을 도울 뿐 아니라 강요하기도 하니까요. 올해엔 상황이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겨울 추위와 한여름 더위 속에 한데서 시위해야 하는 상황이 없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은 무엇일까.

"나이는 공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이처럼 비싼 것도 없을 겁니다. 한 살을 더 먹으려면 일 년 동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어떤 일 년은 조금 가볍고 어떤 일 년은 더 무겁지만 일 년을 온전히 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한 살 더 먹었으니 그만큼 넓어지고 깊어지고 싶습니다. 옳고 그른 것은 따져야 하겠지만 옳은 것에 그늘은 없는지, 그른 것에 억울한 건 없는지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커피를, 특히 라테를 좋아한다는 작가는 이 책의 첫머리에 제목 '생각 라테'를 이렇게 소개한다.

"블랙커피가 진리처럼 버겁다면 우선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으로 시작해 보세요. 갈색 커피 바탕에 우유로 그린 꽃이나 나무, 하트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그림을 그려준 바리스타와, 그 커피가 우리에게 올 때까지 거쳤을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손과 삶을 생각해 보시지요. 한 잔의 라테가 영혼에 젖을 주어 타인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키우는 걸 느끼실 겁니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천천히 음미해 가면서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228쪽. 1만3천 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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