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논설실장

레이건 미국 행정부는 이란과의 대화창구를 마련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지난 85년 레바논 억류 미국 인질을 구출해 내는 과정에서 이란에 무기를 비밀리에 판매한 뒷거래 공작이 바로 그것이다.

1985년 한 해 동안 1200만달러 상당의 미사일을 이란엔 3000만달러에 팔았다. 무기 밀거래로 챙긴 곱절 이상의 이익금은 니카라과 친미 반군인 콘트라를 불법 지원하는 데 투입했다. 이게 바로 미국 공화당 정권의 도덕성 시비를 불러 일으켰던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실체다. 미국 CIA라는 국가기관이 나서서 검은 돈을 움켜쥐고 국제관계를 설정해 가는 과정이 가히 충격적이다.

요즘 대북 송금 파문이 확대 재생산되는 우리의 상황을 보면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망령이 한국에서 되살아났나 착각이 들 정도다. 일맥 상통하는 구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뒷거래설의 대상이 그렇고,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사법적인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가 모두 빼 닮았다.

아직은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2억달러에 이르는 대북 송금의 주역으로 지목되고 있는 국정원 역시 콘트라 스캔들의 미국 CIA와 유사하다. 제프리 로빈슨의 '빨래하는 사내들'이라는 책을 보면 이 돈이 스위스, 바하마, 버뮤다 등의 은행에서 파나마 국적 회사 계좌를 통해 세탁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실무자는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노스 중령으로 돼 있지만, 그 중심엔 CIA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둘러싼 향후 처리 양상 또한 비슷한 경로를 밟게 되지 않을 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옷 로비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서처럼 특검제를 실시했지만 항간에서 생각하는 실체적 진실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그간 우리의 경험이다. 콘트라 스캔들 역시 레이건의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의회 청문회, 특검까지 거쳤어도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권력이 비밀을 선호하면 금권 역시 쉽게 장막 속에서 뒷거래를 통해 위력을 과시하게 마련이라는 교훈만을 남겼을 뿐이다.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자르고 자신을 보호하듯 CIA는 대통령과의 연루설을 그렇게 철저히 차단시킨 덕분이다.

7년 동안 콘트라 스캔들을 수사해 온 로렌스 월시 특별검사의 최종보고서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부통령을 형사소추할 만한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이들이 대이란 무기 밀매와 콘트라 반군 지원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고 사건이 폭로된 이후에는 자신들의 개입사실을 의회와 국민 앞에 은폐했다"는 게 그 요지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북한에 거액이 건네진 당시의 정황을 볼 때 남북회담 성사를 미끼로 돈을 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물론 혹자는 그 과정엔 남북화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내재돼 있을 수도 있다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 서독의 동독 비밀지원에서 보듯이 국제관례상 무를 자르는 것처럼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현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교류·협력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 만은 부인할 수 없다. 대북비밀 지원으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평화상 수상이 폄하되는 상황으로까지 번지는 사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보다 발전적인 향후 남북관계를 위해서라도 대북 송금의 진실을 마냥 덮어 둬서는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검찰이 수사를 유보한 마당에 진실규명의 몫은 정치권으로 넘어 갔다.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해야 마땅하다. 콘트라 스캔들 규명노력이나 우리의 특검운영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는 점을 들어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관련 당사자들은 솔직하고도 겸허한 자세로 대북지원의 요체를 고백하고 탈법적인 사안에 대해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대북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은 정략적인 입장을 탈피하고 거국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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