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투데이 포럼]


지난 크리스마스는 오랜만에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새해를 느긋하게 설계할 수 있는 건 올 한해를 열심히 살아온 필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중에 뭔가를 경고하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중 하나는 딸이 키우는 7살 된 혼혈 리트리버 켈리다. 유기견 보호센터에 있던 강아지를 딸이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데 편안할 땐 꼬리를 흔들며 잘 따르다가도 가끔 공격적으로 짖어대 어떤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게 오기 전 과연 어떤 일을 겪었기에 내가 주는 사랑을 의심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대학의 총장으로 미소와 다정한 인사말을 건네면 누구라도 정답게 화답해주고는 했다. 주변 모든 사람들, 일로 처음 만난 사람들, 먼 이국의 대학 관계자들과 늘 좋은 만남이었음을 서로 고마워했고 행운을 기원했다. 모두 아름다운 만남이었다고 믿고 있는 필자에게 켈리는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필자가 '모르고 지은 죄'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날리는 것 같다. 알고 지은 죄는 알고서도 저질렀기에 나쁜 것이고 모르고 지은 죄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새해를 맞아 더 깊은 깨달음을 지닌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까닭이다.

애틀랜타 집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거리가 하나 있다. 시야가 매우 좁은 커브 길과 이어져 있어 우회전 할 때마다 위험천만하고 신호등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빈번한 곳이었다. 그런데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보기 힘든 장면을 보게됐다. 모든 차량이 정차해서 신호등을 차분히 지키는 것이었다. 최근 등장한 '빨간불에는 정차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판이 효과를 발휘한 듯 보였다. 조금 기다려야 하는 불편은 있었지만 훨씬 마음 편하게 사거리를 지날 수 있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면 어김없이 빨간 신호등과 같은 경고등이 깜빡였다. 건강상의 문제나 심한 스트레스로 경고등이 켜졌을 때,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달리다 보면 결국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경고등을 인지하고 잠시 멈춰 몸과 마음을 정비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뭔가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면 잠깐 멈추고 나와 내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지내온 시간을 더듬어봐야 한다. 어느 길로 어떻게 가야하나 다시 재정비해서 길을 떠나야 한다.

'모든 진지한 등반가는 장애를 만나면 더 노력하려고 하지만 거기서 노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비결은 멈춰 서서 뒤돌아보고, 목표로 부터 한 발 물러서서 며칠 동안 뒹굴며 쉬는 것이다. 나약해 보이는 것이 강해지는 비결이라는 사실을 등반가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조너선 닐의 '셰르파 히말라야의 전설'의 한 구절이다.

두려워 할 것 없다. 남들 눈에 멈춰서 있는 것, 나약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호랑애벌레는 수많은 애벌레들이 기를 쓰고 올라가고자 하는 애벌레 기둥에 자신도 끝까지 가보고 나서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목표 없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 가는 길은 의미가 없다. 결국 호랑애벌레는 특별한 길을 간다. 두렵지만 고치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고치 속에서 오랜 시간 잠을 자며 나비가 될 준비를 마친다. 결국 아름다운 호랑나비로 태어나며 꽃을 수정시키는,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된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경고등이 켜진다고 원망하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다. 자신은 그 경고등을 알아보는 밝은 눈을 가지고 있으며 이제라도 수정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필자도 고향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해를 다시 시작할 생각에 행복하게 새로운 태양을 맞이했다. 여러분의 새해를 응원하며 행운이 함께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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