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충북교육정보원 교사
[화요글밭]


"이리하야 구경이나 하라고 허니/ 만리장성 둘러싸흔 곳에/ 곳곳마다 문을 열어 보앗다/ 보니 춘하추동 사시절이 모다 잇는 것이엇다" - 박봉춘본 <원천강본풀이>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다 모인 공간, 온 시간을 품었기에 오히려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오늘이'라는 소녀가 어려서 잃은 부모를 찾아 우주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이곳에 이르렀다. 지금은 전승이 끊어진 제주 무가, '원천강 본풀이' 속 풍경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이 갖고 있는 역설적 의미가 담겨 있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으로서, 멈춘 듯한 지금인 동시에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며 놓쳐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이는 우리에게 '오늘'이 갖고 있는 시간성, 그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뜻을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을 매우 특별하게 맞이한다. 마치 삶이 저물듯 소중한 이들과 송년의 밤을 보내고, 삶의 첫날인 듯 벅차게 해돋이를 맞이한다. 하지만 실은 일 년 중 그 어느 날도 단지 오늘일 뿐이며, 그 오늘은 그 어느 하루도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 오늘 하루 품은 생각의 씨앗이 한 평생을 꽃피우기도 하고, 오늘 하루 행한 지혜는 지나온 날들이 꽃핀 순간이기도 하다.

존재의 근원 찾기를 위한 여행을 마치면서 오늘이는 옥황 신녀가 돼 인간계의 운명과 시간을 관장하게 된다. 이것은 오늘이가 여행길에 만난 존재들-꽃을 잘 못 피우던 연꽃, 승천하지 못한 용, 끝없이 물을 퍼야하는 선녀들의 사정에 공감하고, 그 고민을 함께 풀어 준 공덕이기도 하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오늘이의 삶은 이렇게 참된 성장의 의미를 밝힌다. 삶의 길에서 만나는 이웃과 생명들을 아끼며, 공감과 연민을 나누어 보라고, 그것이 곧 자아정체성을 찾게 하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그리고 네가 자랐다면 이제 다른 이의 삶을 돌보고 베풀며 살아가라고. 오늘이는 부모를 찾으러 떠난 여행길에 하루 종일 글을 읽고 사는 처녀 '매일'이와 청의동자 '장상'이도 만난다. 이들은 무의미한 글 읽기, 반복된 일상에 지쳐 있는 이들이다. 왜 이렇게 지겨운 운명에 놓여 있는지 원천강에 가서 밝혀 달라고 오늘이에게 부탁한다. 이 역시 우리가 종종 던져 보는 질문 아닌가. 오늘이가 원천강에서 가져온 해답은 매일이와 장상이가 결혼하면 만년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기쁨과 변화를 주는 일은 바로 사랑이었던 것이다. 부부의 결혼은 자식으로 이어져 새로운 사랑,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질 테니 만년영화를 누린다고 할 것이다.

새해 첫날을 생생하고 소중하게 보냈다면, 이제 내일도, 모래도 그렇게 하자. 우리 충북교육청은 공감과 연민을 키우는 문화예술교육을 충북교육 시책 중 하나로 추진해왔다. 아이들이 오늘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난다면 우리에게도 만년영화가 기약될 것이다. 부모 없이 자랐어도 천지만물과 교감하며 멋지게 자라 인간의 삶을 보살피는 따뜻한 여신으로 자란 오늘이, 그 신화가 우리 현실에서 정책으로, 일상으로, 문화로 펼쳐지길 바란다. 참 귀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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