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 '자살론' 비판한 신간 '자살의 사회학'

▲ 사하가마나(함께 가기) 형식의 사티. 미망인은 브라만 두 명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시신이 타고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진다. 플랑드르 화가 발타자르 솔빈스가 1796년 인도 콜카타에서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제작한 판화다. [글항아리 제공]
▲ 사하가마나(함께 가기) 형식의 사티. 미망인은 브라만 두 명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시신이 타고 있는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진다. 플랑드르 화가 발타자르 솔빈스가 1796년 인도 콜카타에서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제작한 판화다. [글항아리 제공]
▲ 재가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국 가문의 미망인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 아치.[글항아리 제공]
▲ 재가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국 가문의 미망인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 아치.[글항아리 제공]
▲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엇이 개인을 자발적 죽음으로 몰고 가는가

에밀 뒤르켐 '자살론' 비판한 신간 '자살의 사회학'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어느 한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인 요인에 주목한다. 그는 '자살론'에서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로 자살을 분류했다.

이들 유형은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정도와 관련이 있다. 사회통합 정도가 낮아져 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됐을 때 이기적 자살이 발생한다면 이타적 자살은 반대로 사회통합의 정도가 너무 강해 개인이 집단에 매몰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사회규제가 통째로 흔들려 개인의 가치관과 기반이 무너질 때 발생하는 자살은 아노미적 자살이고 사회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면 숙명적 자살로 이어진다는 게 뒤르켐의 주장이다.

뒤르켐의 이론에 따르자면 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이 약해지는 현대사회로 올수록 '이타적 자살'은 줄어들고 반대로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끈이 느슨해지면서 '이기적 자살'이나 '아노미적 자살'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마르치오 바르발리에 따르면 20세기의 마지막 40년간 이와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이타적 자살은 오히려 늘어났고 자살테러범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이타적 자살도 등장했다. 서유럽에서는 자살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바르발리는 이런 점에서 사회적 통합과 규제를 강조한 뒤르켐의 이론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신간 '자살의 사회학'(글항아리 펴냄)에서 새로운 자살론을 내놓는다.

책은 자살의 유형을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공격적 자살', '무기로서의 자살'로 분류하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자살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고 서양과 동양에서 자살의 의미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비교·분석한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은 뒤르켐의 용어를 빌려왔지만, 그 원인에 사회가 아닌 '개인'의 의도에 초점을 맞춘다. '이기적 자살'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나 심한 질병, 파산 등 여러 이유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목숨을 끊는 것이다.

'이타적 자살'은 누군가를 위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시신을 화장하는 불에서 함께 불타 죽거나 매장되는 의식인 '사티'로 죽는 인도의 여성들이나 죽어서도 남편을 따르기 위해서, 또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중국 과부들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도 '이타적 자살'에 해당할 수 있다.

'공격적 자살'과 '무기로서의 자살'은 자살을 보복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자살이 '공격적 자살'이라면 일본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나 자살테러범의 죽음은 '무기로서의 자살'로 분류된다.


이들 네 가지 유형의 자살에는 뒤르켐이 말한 사회통합과 규제 정도도 물론 영향을 끼치지만, 책은 정신의학적, 심리적, 문화적 요인까지 함께 살핀다.

종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은 신앙을 버리기보다 죽음을 택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나타난 이후 종교의 영향과 자살에 대한 엄격한 처벌 등으로 자살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17세기말∼18세기초 자살을 옹호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생각이 퍼졌고 이기적 자살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했다.

동양에서는 서양과 다른 양상의 자살이 나타난다. 중국 불교의 교리 문답서는 이기적인 이유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비난했지만 '군주에 대한 충·효·정절·정의·전쟁'에 의한 자살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또 13세기 중국에서는 결혼 전 약혼자가 죽었을 때 약혼자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수절하는 처녀들'이 있었는데 이때 이들은 친정에서 계속 살거나 죽은 약혼자 집에 들어가거나 목숨을 끊는 세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서구에서는 '왜'에 초점을 맞춰 자살 이유를 찾았다면 중국에서는 '누가 이 지경으로 몰고 갔는가'에 중점을 둬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졌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복수하고자 자살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도 특징이다.

정치적 요인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약한 집단이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자살을 일종의 무기로 이용했다. 분신자살은 정치적·종교적 적수에 대항하는 집단적 항의 수단으로 지금도 이용되고 있고 헤즈볼라에서 시작된 자살공격도 여기에 해당한다.

저자는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이타적 자살의 중요성이 높아진 현상도, 서유럽에서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 현상도 사회적 통합과 규제의 변화로 설명되지 않는다"면서 "사회적 통합과 규제라는 두 원인만 검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오직 두 원인만을 바탕으로 분류한 자살의 유형을 계속 이용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우정 옮김. 604쪽. 2만9천800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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