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 청북교회 목사
[화요글밭]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에 도달했다. 세월의 속도가 10대 때는 10㎞, 20대는 20㎞, 50대는 50㎞, 70대는 70㎞로 달린다는 유머를 젊어서는 농담처럼 듣고 웃었지만 이제 중년을 살면서 보니 그 말이 결코 과장된 말은 아닌 듯하다. 엊그제 시작한 한 해가 눈감았다 뜨니 막달에 와 있다. 그러나 며칠 남은 짧은 날이라고 해서 자투리로 여겨 버릴 것처럼 털어내고 새해를 맞는다면 상쾌할 것만 같지는 않다. 비록 며칠 안 남은 날이라도 잘 마무리해야 새해를 의미 있게 맞을 것 같다.

예부터 선조들은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좋은 결과 맺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종의 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작'한 일의 마무리다. 아예 시작한 것이 없으면 맺을 열매나 결과도 없을텐 데, 시작한 일이 있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않고 잘 마무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금년 초에 새해를 시작하면서 작심했거나 시작했던 일이 있으면, 이제 한 해를 다 보내면서 생각했던 대로 끝까지 잘 감당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힘을 썼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마무리 투수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된다. 선발투수에 비해 총 31분의 1정도의 이닝을 던지는 투수들에게 구단들은 왜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해서 영입하려는가. 마무리 투수가 실패하면 다 이긴 경기를 내주기도 하고, 시즌 전체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팀마다 좋은 마무리 투수는 필수적이다. 축구 경기에서 아무리 기가 막힌 어시스트가 올라와도 골로 마무리 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주변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도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이들이 많다. 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 또는 본인의 안일함,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학업을 끝까지 잘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들이다. 학위를 마쳤다고 인생이 확연하게 달라질지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도 시작한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신학을 연구하는 목사로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태반이다. 예수는 인간적으로 보면 불과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로마의 가장 극악한 처형방법인 십자가에서 생을 마쳤다. 이 땅에 오는 장면도 초월적이지만 죽음을 맞는 장면도 극적이었다. 그는 과연 인생을 잘 마무리한 것일까. 잘 마무리했다. 원래 온 의도를 십자가만큼 잘 표현할 도구는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수명의 연한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뒤집는 역사를 죽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마무리만큼 멋진 유종의 미를 거둔 사례는 드물다.

지난 5월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혼돈의 세월 속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정상적인 정치일정이었으면 이번 주간이 19대 대통령 선거로 지금 한창 막바지 유세 중이었을 터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 출범한 정부가 각종 새로운 정책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일들은 임기 말에 마칠 단기적인 것도 있고, 훗날 역사 속에 평가 받을 일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수권자들이 마무리를 잘못해 겪는 고초를 이번 정부는 피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과정을 잘 지내고도 실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정에서 조금 모자라도 마무리를 잘해 상을 받는 이가 있다. 불과 며칠 안 남은 날이라도 잘 마무리하면 새해를 다른 마음으로 맞을 수 있겠다. 오늘로서 이 지면을 통한 필자의 칼럼도 마지막 회다. 처음 제안을 받고 시작했던 연초의 마음이 흐트러짐이 없이 잘해냈는지 이제 살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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