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지리 작가 유작…취업전쟁서 분열 겪는 젊은이 심리 탁월하게 그려

날카로운 풍자 번득이는 소설 '3차 면접에서 돌발행동…'

故 박지리 작가 유작…취업전쟁서 분열 겪는 젊은이 심리 탁월하게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처지를 바꿔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금 두 사람이 면접을 보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와 여러분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 사람은 살인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도둑입니다. 여러분이 회사 면접관이라면 누구를 뽑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구직자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어떤 대답을 해야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면접에 합격할 수 있을까.

장편소설 '3차 면접에서 돌발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사계절)는 이런 어리둥절한 시험으로 끊임없이 사람을 점수 매기고 줄 세우는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한 소설이다.

처음부터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이 소설은 그 안에 담고 있는 사회적 의미도 적지 않은 수작이다.

요약하자면 취업전쟁에 시달리다 이제 고지를 막 눈앞에 둔 한 남자가 뜻밖의 함정에 무너져버리는 이야기다. 면접에서 한 번쯤 떨어져 본 독자라면 격한 공감과 연민을 느끼며 읽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M'이란 젊은 남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을 위해 마흔일곱 번 면접을 봤지만 떨어졌고 이제 마흔여덟번째 면접을 보러 간다. 수많은 면접을 통해 알쏭달쏭한 면접의 역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그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신경을 쓴다. 그러다 면접관들의 시선을 끄는 데 실패하는데, 살인자와 도둑 중 누구를 채용하겠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경쟁자들과 다른 답을 내놔 면접관들의 마음을 산다.

이 소설의 재미는 주인공이 수십 번 면접 끝에 합격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M은 그 똑똑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기업인 제과회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흔히 진행하는 신입사원 연수에 간다. 해변이 가까운 숲 속에 자리한 좋은 연수원에서 합숙을 시작하고 인근 마을에 집짓기 봉사활동도 간다.

승리를 만끽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경치를 감상하고 봉사활동에도 즐겁게 임하던 그에게 '친구'로 지칭되는 동기 하나가 봉사활동에 숨은 회사의 저의에 관해 들려준다. 일견 진실로 보이는 그 얘기는 M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잠들어 있던 불안을 깨운다. 마침 그날 저녁 우연히 선배 사수들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이상한 파일을 하나 보게 되고, 거기엔 신입사원 인원과 비슷한 숫자와 함께 ○, △, × 표시가 돼 있다. 이걸 본 M은 이 합숙이 그냥 연수가 아니라 또 하나의 면접시험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모든 행동에 어떤 의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표를 받지 않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시작된다. M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 결말에 반전이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부풀려지는 불안과 의심을 터무니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회 곳곳에 대입·채용 비리가 존재하고 그 진실이 속속 드러나기도 한다. '빽없는 흙수저'가 살아남으려면 발버둥 치는 수밖에 없고, 종종 납득되지 않는 시험과 면접 절차의 끝에 탈락이란 두 글자를 받게 된다면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키우게 마련이다. 어렵게 회사에 들어간다 해도 언제든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기는 어렵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젊은이들이 겪는 좌절과 불안, 초조한 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만약 너무 훌륭해서 떨어진 거라면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야." (23쪽)

"지금은 아무리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이다." (24쪽)

"부품. 알고 있다. 어딜 가나 한 개의 부품일 뿐이다. 그 자체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어떤 목적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부품 한 개. (중략) 제자리에서 잘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순정 부품 마크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작은 부품의 생산성, 대수롭지 않은 운명이다. 그 대수롭지 않은 운명을 위해 마흔여덟 번의 면접을 봤다. 마흔일곱 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82쪽)

이 소설은 지난해 향년 31세로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남긴 박지리 작가의 유작이다. 그는 생전에 장편소설 '합체', '맨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 범상치 않은 작품들을 남겼다.

264쪽. 1만3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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