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낱말속 사연]

'거덜이 나다.' '재산이나 살림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거나 없어지는 것, 옷이나 신 등이 다 닳아 떨어지는 것, 하려던 일이 여지없이 결딴이 나는 것’을 말한다. "무계획적으로 마구 써대니 결국 살림이 거덜이 났다."

명사 ‘거덜’과 보조동사 ‘나다’가 합쳐진 문장이다.

1392년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면서 수레, 가마, 말을 맡아보는 사복시(司僕寺)란 관청을 두었다. 사복시에는 '거덜'이란 종7품의 잡직이 있었다. 평소에는 말에 먹이를 주고 마구간을 청소하거나 수레나 가마를 수선하는 등 허드렛일이 주어져 미천한 종에 불과했다. 이런 종들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질 때가 있었다. 임금이나 벼슬아치들이 행차할 때다. 이들은 말고삐를 잡거나 선두에 나서 백성들의 행차를 통제하며 앞길을 틔웠다. 길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소리를 치기도 하고, 제때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등 온갖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때 거덜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잘난 체 거드름을 피우고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며 얼마나 우쭐대겠는가. 하지만 이것도 잠시 사복시로 돌아가면 말똥 치우는 등 각종 잡일이 기다렸다.

'거덜이 나다’는 이처럼 ‘거덜이 몸을 건방지게 흔드는 것’을 말한다. ‘흔들거리다’가 강조되면서 의미가 확대됐다. 살림이나 일의 기반이 흔들리면 결딴이 난다. 기반마저 흔들려 재기불능하거나 망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가 흔들거리는 ‘거덜’의 모습에 비유됐다. 그러니까 ‘거덜’은 한 순간 권세를 누렸지만 행차종료와 함께 권세를 잃어 거덜이 난 셈이다.

거덜 난 나라를 채워 넣고, 바로 잡고, 수선하기에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하지만 정상화하기에는 무척 요원하다. 아니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거덜 난 정도가 심한 것도 문제지만 세차게 불어 닥친 외환(外患), 북핵 위기가 시급히 진화할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거덜 난 나라 해결에는 우왕좌왕, 북핵위기 돌파에는 무대책, 나라는 갈수록 거덜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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