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연 공주대학교 겸임교수
[수요광장]

마이스(MICE)산업이 현대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국가경쟁력뿐 아니라 미래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Meeting, Incentives, Convention, Exhibition’의 머리글자를 딴 어휘로 기업회의, 포상관광, 국제회의, 이벤트 및 전시란 뜻을 담고 있다. 산업사회, 정보사회에서 정상회의나 박람회 또는 대규모 축제, 이벤트 등을 포함한 모든 행사를 진행할 때 독립된 기능을 상호 보완해 다방면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한 매우 중요한 국가적 차원의 종합서비스 산업이다.

마이스 산업의 핵심은 서비스이다. 학자나 전문가들의 교류로 인적서비스가 바탕이 돼야 한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려는 모든 나라는 굵직굵직한 국제회의나 엑스포, 대형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준비한다. 국제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넓히고, 조사와 연구 활동을 공유하면서 소통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인지도가 높은 행사를 유치하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국제행사에서 국가 신인도(信認度)를 높이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행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 효과 외에도 부가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가 많아 파급효과가 크다. 그러나 그 중심에 축은 컨벤션이다.

1970년대를 전후해 컨벤션이란 용어는 국제회의로 통했다. 국제회의는 대부분 특급호텔의 대형 연회장을 이용 했고 그래서 국제회의 하면 컨벤션이라고 인식됐다. 제조업이나 건설업 등을 제외한 호텔산업을 중심으로 금융, 통신, 유통, 관광 등이 서비스 산업으로 각광받으면서 컨벤션은 산업으로 동반 성장했다. 성공적인 행사를 소화하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 욕구에 충족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특정한 주제를 갖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토의하고, 협의해 창조적인 결론을 내기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몇 개월 전부터 종교행사를 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넘기 어려운 고비에 부딪쳤다. 쉽게 시설을 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외적인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1000명 정도룰 수용할 시설도 많지 않았지만 가능한 시설에서는 대부분 종교행사에는 대관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강단에서 국제회의론을 강의하면서도 학문적으로는 접근해 본적이 없어 이해할 수 없었다. 컨벤션 문화가 이렇게 열악할 수 있을까를 실감하는 시간이 됐다. 컨벤션센터는 모든 행사를 위해 만들어졌을 텐데 종교행사라고 거절하는 풍토는 언제 어디서부터일까? 이렇게 시설이 빈약한 곳이 충북인가? 종교적인 행사도 일반 행사와 같이 모든 장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문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반적인 축제나 이벤트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이뤄진다. 지구촌의 국제회의나 올림픽 같은 축제도 모든 인간관계의 공동목표에서 이뤄진다. 이 인간관계가 이뤄지는 회의장소가 어떤 이유로든 거절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듯 싶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가장 인간관계를 잘 하는 사람은 어울려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닐까 싶다. 그럼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선한 생각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 화하면서 가진 것을 베풀며 사는 삶이 인간관계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해를 보내면서 꿈과 희망의 싹이 찬바람에 시들지 않는 겨울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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