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본인·가족들 동의로 결정
노숙자·독거노인 등 적용 막막
‘중재역할’ 관리기관 신설 필요

이른바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시범사업이 시행 50일을 지나면서 존엄사 선택 의사를 담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울타리 밖에 놓인 무연고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중재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2월 본격 시행을 앞둔 연명의료결정법의 시범사업을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경우는 모두 4066건이다.

연명의료결정은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명이 환자의 임종 단계 판단을 내리게 되면 심폐소생술과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 연명의료의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 의사는 우선적으로 환자 본인이 결정하지만 환자의 의사 표현이 제한될 경우 미리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진행하게 된다.

또 의식이 없는 환자의 가족 2명의 동의를 통해서도 중단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무연고자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이들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 근거가 전무한 상태다. 일선 병원에서도 가족과 단절된 ‘현대판 무연고자’에 대한 고민이 깊다.

지역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알콜중독자나 독거노인, 노숙인 등이 응급실로 실려오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사실상의 무연고자나 다름없다”며 “병원에서 연명의료를 하다 쓸쓸한 임종에 접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15년 연명의료결정법률안에 ‘법정대리인 또는 가족이 없는 환자는 병원윤리위원회가 연명의료 중단을 의결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됐지만 위헌 소지 논란으로 현재 삭제된 상태다. 이런 무연고자의 연명의료를 두고 의료계와 종교계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의료계는 병원윤리위원회를 통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웰다잉’이라는 보편성에 부합한다고 주장하지만, 종교계에서는 제3자를 통한 연명의료 중단 남용으로 인해 생명 경시 풍조로 확대될 수 있다고 반발한다.

일각에선 병원윤리위와 함께 정부기관의 별도 확인 절차를 중재안으로 내놓고 있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무연고자도 존엄사를 택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울타리 밖 계층에 대한 중재역할을 할 연명의료 관리기관 등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의 연명의료 의사를 확인할 현장 전문인력 배치도 검토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인희 기자 leeih57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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