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엔디컷 우송대 총장
[아침마당]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갈등이 깊었던 부인과 아이들을 떠나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지 열흘 만에 시골 역 대합실에서 숨을 거둔다.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살아있을 때부터 신화적인 존재였던 그의 비참한 말로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한 말은 아내를 절대로 자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는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와 더불어 세계 3대 악처로 꼽힌다. 13명의 아이를 유모 없이 돌보고 톨스토이의 평탄하지 않은 삶을 지켜봐야했으며 그의 작품을 꼼꼼하게 교정하는 비서역할까지 했던 소피아가 세계 3대 악처로 불리는 데는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라는 자신의 말을 행하지 못한 톨스토이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불안한 부부사이 때문에 세기의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마저 편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그다지 동경의 대상은 아니다.

필자는 지난달에 결혼 58주년을 맞았고 11월 10일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있기 때문에 매년 우리 부부는 둘이서라도 11월을 특별하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런 바람과는 달리 지난 11월 10일, 우리 부부는 서로 바빴다. 필자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행사에, 아내는 한국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야했다. 필자는 조지아 공대에 오랫동안 재직했기에 조지아 공대 중국 동문을 위해 열린 기념행사에 초대받았다.

1979년에 처음 방문했던 상하이의 이미지는 간데없이 사라졌다. 광활한 논밭을 채웠던 풀들이 마치 빌딩숲으로 자란 느낌이었다. 호텔에서 만난 성공한 조지아 공대 졸업생들을 보며 가슴 뿌듯했던 순간, NCAA 농구 경기 관람 후 중국의 농구 스타 야오밍을 만났던 짜릿했던 순간, 그 순간 모두 아내와 함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필자가 상하이에 있을 때 아내는 대전에서 솔브릿지 컬처데이 행사에 참석했다. 구성원 모두 자신의 민족전통 복장을 입고 문화를 공유하는 행사인데 올해는 총 55개국의 학생들이 참여해 체육관이 비좁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 교직원들은 한복을 입고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은 자기나라의 민속의상을 입고 참가하였기에 구경할 것도 많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아내는 필자가 참석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바쁜 와중에도 필자 부부는 추수감사절로 오붓하게 11월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일 년 중 가장 의미 있는 날을 어떻게 지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 부부는 거의 동시에 '스파게티'라고 외쳤다. 함께 마주보며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주방에서 파스타, 스파게티 소스, 빵, 샐러드, 와인으로 멋진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지난 1년간 우리와 함께 한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조용한 저녁을 즐겼다. 와인 잔을 부딪치며 상하이에서 필자가 얼마나 아내의 빈자를 크게 느꼈는지, 아내 또한 솔브릿지 컬처데이에 필자와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부부란 그런 것이다.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아도 그 눈빛에 담겨있는 사랑과 애정과 존경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시간을 함께 지내며 '스파게티'를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조용히 서로를 위한 저녁밥상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식탁에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 부부가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현재의 시간에 지금 마주하고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평범한 오늘이 가장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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