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절주절]

 

 

난 추운 겨울에 마시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대부분 한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를 떠올리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하얀 눈을 보면 하얀 막걸리가 떠오른다(물론, 비올 때도 먹고 싶다).

등산을 하다 보면, 막걸리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정상까지 땀을 쫙 빼고 올라가면, 막걸리가 당긴다. 그래서 내 등산 마지막 코스는 늘 막걸리 집이었다. 그래야 등산을 제대로 끝마친 기분이었다. 파전을 곁들이며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면 그 꿀맛에 피로가 싹 달아났다.

막걸리는 동동주, 청주와 한 항아리에서 태어난 형제다. 셋 다 시작은 같다.

밀로 누룩을 만들고 쌀로 고두밥을 지어 물과 섞어 빚는다. 2주 뒤쯤, 덜 삭은 고두밥 알갱이가 술덧 위에 동동 뜰 때, 이때 국자로 쌀알과 함께 술을 떠내면 '동동주'가 된다. 술을 떠내지 않고 그냥 두면 쌀알이 가라앉고 맑은 술이 된다. 맑은 술이 된 윗부분만 떠내면 '청주'가 되고, 그 밑에 가라앉은 지게미를 술덧과 함께 체에 걸러내면 '막걸리'가 된다.이름 유래도 여기서 나온다. 동동 떠있다 하여 '동동주', 맑다(淸) 하여 '청주', 막 걸러냈다 해서 '막걸리'다.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운명은 달라진다. 먼저 태어난 덕인지, '청주'는 조상님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몸이 되고, '동동주'는 막걸리보다 비싼 몸이 된다. 혹자는 막걸리보다 동동주가 귀한 술이라며, 찌꺼기인 막걸리 말고 동동주를 시키자고 한다. 그러나 난 막걸리가 더 정감 간다. 막걸리는 발효된 만큼 식이섬유소도 풍부하고, 항암효과도 있단다(더 사랑할 수밖에).

내가 처음 막걸리를 접한 건 스무 살 대학 새내기 때다. 1-2학년 대면식이었다(막걸리 특성상 배가 불러 덜 먹어서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지, 단체 행사에선 막걸리를 자주 마셨다). '청송막걸리'라는 곳을 갔는데, 처음 맛보는 막걸리 맛에 매료됐다. 달달한 게 취하는 거 같지도 않고, 시원해서 자꾸 훌쩍훌쩍 마셨다. 그땐 몰랐다. 막걸리는 한순간에 간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만취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막걸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막걸리가 내가 원하던 품성을 갖고 있다. 구수하지만 강렬한, 마냥 달달하지만은 않은, 소박한 듯 풍족한, 어디서나 누구와도 어울리는… 그리고 무엇보다 동동주, 청주가 떠난 자리에서 홀로 인내하며 버틴 그를 칭찬한다. 그는 찌꺼기가 아닌 진정한 고영양 진액이다. 그래서 닮고 싶다.

오늘 눈이나 비가 온다던데, 막걸리 스승과 함께해야겠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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