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사뿐사뿐 오네'…눈 오는 날 주제로 시 짓고 그림 그려

곡성 할머니 시인들의 두 번째 작품…시 그림책 출간

'눈이 사뿐사뿐 오네'…눈 오는 날 주제로 시 짓고 그림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마을 도서관에서 생애 처음 한글을 배우고 시집까지 낸 전라남도 곡성군 할머니들이 새로운 도전을 했다. 시와 함께 그림을 그려 두 번째 책을 낸 것.

지난해 4월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로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준 김막동, 김점순,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최영자 할머니가 이번에는 시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북금곰)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할머니들이 '눈 오는 날'을 주제로 쓴 시 18편과 각 시에 나오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담겼다.

할머니들의 삶에서 눈이 오던 날 마음에 남은 서럽고 애틋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진솔한 시와 그림으로 표현됐다. 그림들은 대부분 투박하지만, 꾸준히 습작하며 다듬은 시들은 프로 시인들의 작품 못지않게 매끄럽다. 시에 담긴 할머니들의 개인사는 그 시대 여성들의 보편적인 역사이기도 해서 특별한 감동을 준다.

"어메는 나를 낳고 "또 딸이네."/윗목에 밀어 두고 울었다/나마저 너를 미워하면/세상이 너를 미워하겠지/질긴 숨 붙어 있는 핏덩이 같은/나를 안아 들고 또 울었다/하늘에서는 흰 눈송이가/하얀 이불솜처럼 지붕을 감싸던 날이었다" (안기임 할머니의 '어쩌다 세상에 와서')

"밤새 눈이 와/발이 꽉 묶여 버려/오도 가도 못하겄네/어쩔까/이 눈이 쌀이라믄 좋겄네" (박점례 할머니의 '겨울')


앞서 할머니들은 곡성에 있는 '길작은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낸 시로 지난해 1월 지역 문학상을 받았고, 시 124편을 모아 시집을 내며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시집을 낸 뒤 그 안에 담긴 너무나도 솔직한 이야기에 어떤 자녀들은 당황해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속상해한 할머니들도 있었다고 김선자 길작은도서관장은 전한다.

김 관장은 이런 할머니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계속 창작 활동을 이어가도록 새로운 시 그림책 출간을 제안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처음에는 그림 그리기를 공부가 아닌 '허튼짓'이라 치부하며 투덜거리고 잘 못 그리겠다며 주저하기도 했지만, 1년 동안 연습하며 그리기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에서 눈 오는 날을 주제로 각자 시를 쓰게 됐고, 각 시에 들어갈 그림을 공동 작업으로 그렸다. 할머니들은 처음에는 '내가 틀리면 다른 사람도 다시 그려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어 손이 떨린다'고 하다가 한 장면 한 장면 완성돼 가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했다고 한다.

김 관장은 이 책을 내며 "손주 세대들이 할머니들의 세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할머니들의 시 그림책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의 장이 열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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