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춘추]

자신의 건강이나 내 가족을 위한 활동 등 남에게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들이 크게 인정해주지 않는 일을 지속해서 남들보다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이른 아침부터 가장 일찍 출근하던 신입사원도 시간이 흘러 회사생활에 적응하고, 직장 상사에게 비칠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며, 출퇴근 시간이 아닌 업무 능력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되면, 출근 시간도 자연스레 입사 초기보다는 늦춰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지위나 역할도 변하며, 상황도 변해서, 이제는 출근을 이른 시간에 한다고 더 인정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에 행동도 변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꼭 해야 하는 일에는 몰두하지만, 그 상황이 바뀌면 나도 바뀐다. 누구나 제한된 시간 속에 살며, 그 시간을 어디에 더 분배할지는 바뀌는 상황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이 어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기업의 대표이사라면, 굳이 매일같이 꼭두새벽부터 출근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눈치를 줄 사람이 없고, 직장생활을 하는 파트타임 대학원생이라면, 굳이 수면시간을 최대한 줄여가며 학업에 목숨 걸지 않아도, 졸업하는 것이나 먹고사는 것에 지장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무엇인가 매우 열심히 한다 해도 내 상황이나 지위 등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될지라도, 누군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 나는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님이 매일같이 이른 시간에 출근하시고, 전날 임원회식 자리에서 과음하셔도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하시는 것을 봐서 알고 있다. 그분이 정말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안 봐서 잘 모르지만, 그분의 지위에서 그런 생활습관을 가지셨다는 것은 그분이 어떤 일에든 매우 성실히 임하실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내가 매일같이 업무와 연관된 글들을 읽고 요약하며, 신문사에 칼럼을 써서 보내고,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장은 내 삶을 단시간에 획기적으로 바꿔줄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누군가는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이 생겼다. 얼마 전까지 주기적으로 만나 뵙던 의사 선생님께서 신문에 난 내 글을 읽고 오랜만에 연락을 주신 것이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나 자신만 보고 열심히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올해 초 나를 위해 결심한 계획이, 내년 초에도 다시 결심만 하는 계획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겪거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무엇인가 열심히 해야 할 동력이 부족해졌다면,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다’ 생각해 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최호장<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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