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아침마당]

작년 경주 지진과 최근의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여태껏 집이 무너지는 수준의 큰 지진은 다른 나라 이야기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현대적 지진계측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다. 그 이후 지난 40년 동안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총 10차례 발생했는데, 그 중 절반이 2014년 이후로 집중되었다. 특히 경주와 포항 지진은 도시 가까이에서 발생하여 그 위력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번 포항 지진을 통해 우리나라의 건축물 상당수가 지진에 취약하다는 점과 함께, 제대로 지은 건축물이라면 규모 5.5 수준의 지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정부와 국민의 지진 대응능력이 작년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음을 확인한 것도 큰 소득이다.

대전에서 일하는 필자는 진동을 느끼자마자 지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진동이 멈춘 직후 포항 지진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를 받게 되어 별다른 동요 없이 우리 연구원 시설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서울과 같이 진앙에서 거리가 먼 곳에서는 긴급재난문자를 받은 후 진동을 느꼈다고 하니, 작년에 비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지진 규모에 비해 건물 파손이 컸지만 인명피해는 작았던 것도 작년 지진으로부터 얻은 교훈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진 발생 1주일 후 예상되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정밀분석결과를 반영하여 진원지 정보를 수정해서 공개한 것도 바람직했다. 우리나라의 지진대응 체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지진은 과거에도 일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미 일부 산업분야에서는 훨씬 더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내진설계를 해왔다. 그러나 지진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설계?시공되어 운영 중인 시설물이 훨씬 더 많다. 일상생활에서도 지진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경주와 포항지진을 우리 사회의 지진 대응체계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진 대응체계를 마련할 때 지진의 위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최악의 상황에만 치중해서 방안을 만드는 것도 위험하다. 실효성 있는 대응방안 수립에 필수적인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따라 최상의 지식과 정보에 근거하여 사회 전체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필요한 지식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주요 시설을 건설하거나 대응 매뉴얼을 만들 때 가정해야 하는 최대 지진 규모와 진동 특성이다. 이는 1978년 이후 계기지진 기록으로부터의 통계적 예측,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지진 기록 분석, 전 국토 정밀 단층조사 결과를 근거로 한 예측 등을 종합하여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계기지진 기록은 수집 기간이 너무 짧아서 활용에 한계가 있고, 전 국토 정밀 단층조사는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반면에 세계 최고의 기록문화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역사지진에 대한 재평가는 1~2년 내에 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일부 연구그룹이나 개인 연구자의 역사지진 평가는 있었지만, 그 편차가 크고 신뢰성에 한계가 있다. 이제 포항과 경주의 지진규모와 진동특성, 이에 따른 건축물 피해에 대한 상세 정보가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최고수준의 지질학자, 지진학자, 건축공학자, 토목공학자 등이 연합하여 역사지진을 재평가할 충분한 기반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역사지진에 대한 체계적이고 신뢰성 있는 평가결과가 나오면, 지금까지 확인된 단층조사 결과 등과 결합하여 우리나라에 적합한 지진대응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안전이 중요한 산업시설이나 다중이용시설은 당연히 발생가능한 지진에 대해 합리적인 대응능력을 갖도록 설치하고 운영해야 한다. 기존 시설의 경우 하드웨어 보강의 한계는 대응절차서와 대응 훈련 등 소프트웨어 측면을 보강하여 극복해야 한다.

지진에 대한 대응체계는 최상의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지진에 대한 신뢰성 있는 재평가가 시급하고 중요한 출발점임을 다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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