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프랑스에서도 맛집 경쟁은 치열하다. 입구에 '미슐랭 가이드'나 '고 에 미요' 같은 유명 안내서에 실렸다는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다.
우리나라 인구 5000여 만명에 음식점 수는 약 70만개. 일본도 74만개에 이르지만 전체 인구가 우리의 2.6배이므로 단순비교는 어려워진다. 치열한 각축 속에 별다른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 곧바로 폐업하는 악순환 속에서 국민들의 입맛과 눈높이는 날로 높아만 간다. 맛, 가격, 분위기, 서비스, 위치와 주차공간 같은 여러 요소 가운데 으뜸은 단연 '맛'이다. 맛이 담보된다면 조금 멀어도, 비싸도, 다소 불친절해도, 오로지 먹는 데만 열중하는 썰렁한 분위기라도 그리고 주차가 불편하다해도 사람들은 몰려든다.

이즈음 식탐을 자극하는 화려한 사진과 미사여구가 넘쳐나는 이른바 맛집 소개를 읽다보니 이 분야 초기 개척자 소설가 백파 홍성유(1928-2002) 선생이 생각난다. 일간지와 주간지에 사진도 없이 오로지 유려하게 술술 읽히는 문장의 힘만으로 독자들의 입맛을 다시게 만든 것은 여유와 풍류였다. 연재 칼럼을 묶어 '한국의 맛있는 집 666, 999, 1234'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선생의 맛집 기행은 특정 업소 칭찬보다는 식재료 자체를 구별하는 법과 올바른 요리법, 제대로 먹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오늘처럼 온갖 마케팅 상술과 정직하지 못한 포스팅, 과장과 눈가림이 난무하는 맛집 소개를 그가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음식의 때깔과 색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이즈음 먹방이나 SNS의 영상 대신에 문자 텍스트 자체로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한 홍성유 선생의 원조 맛집기행은 그래서 돋보인다. 시각과 청각의 자극이 인간의 중요한 감성기능인 상상력과 유추기능을 잠식해 버렸지만 그래도 맛 칼럼니스트들은 열심히 활동 중이다. 누구나 될 수 있고, 아무나 될 수 없다는 맛 칼럼니스트는 음식에 대한 나름의 철학적 화두가 필요하고 자기 스스로 음식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황교익 선생의 충고가 공감을 준다. 천편일률적인 식상한 표현을 벗어나 미각 훈련과 맛에 대한 다양한 언어구사 역시 음식선진국 진입의 관건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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