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충북도교육정보원 교사
[투데이춘추]

지난달 모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십여 년 세월, 학교 안팎 풍경은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강당 앞 백합나무는 그대로 있었지만, 우리가 생활예절과 요리를 배우며 며칠씩 살아보던 생활관은 건물 수명이 다해 철거됐다고 한다.

모교의 생활관은 가정주택형 건물이었다. 당시 우리들은 생활관을 '생각보다 좋은 집'이라고 감탄했는데, 선생님들께서는 '예전에는 최고의 신식주택'이었다던 말씀이 기억난다.

특히 시골에서 진학해 온 옛 선배들은 주방을 갖춘 양옥을 처음 경험해 보기도 했다고! 가정선생님께서는 가난했던 선배들도 학교에서 고급문화를 접해보고 자랐기에 사회 어디에 나가서도 기죽지 않고 품위 있게 처신할 수 있었다고 말씀했다.

문득 그 말씀을 새기다보니 초등학교, 중학교 생각도 떠오른다. 두 학교 모두 신설교의 2회 졸업생으로 다녔는데, 신식 학교건물에서 자랑이 되는 것은 이중창과 수도시설,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학창시절을 말씀하시며, 펌프질을 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수돗물을 편하게 펑펑 쓰는 게 말할 수 없이 좋았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자랑이고, 선망인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필자는 유치원도 2회 졸업생이었다. 아마 유치원교육 대중화 1세대쯤 될 것이다. 당시 우리 유치원 아이들에게 흔한 조회, 종례 말씀은 뭐였던가? 바로 '제발 아침에 일찍 등원하지 말라'였다. 집에서는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신기한 놀이 교구가 가득했기에, 아이들은 아침 일찍 유치원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얼마 전 충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학교의 방만한 예산 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 학교 경험이 익숙한 어른들 눈에는 학교에서 집행되는 간식비나 물품구입비, 체험경비 등이 불필요한 지출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점이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한 학교의 스포츠교육을 예로 들면서 예산이 크게 드는 1회성 체험을 했다고 문제 삼은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필자나 옛 선배들이 그러했듯, 학교는 최상의 문화환경과 첨단기술을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최고의 문화적 경험과 첨단시설 속에서 아이들이 미래를 향해 자라고, 경제적 불평등을 딛고 누구나 해맑게 성장할 수 있다.

고급화된 체험에서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면, 그걸 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학교도 다할 수 있도록 예산 증액에 힘써야 할 것이다. 정작 어른들에겐 여행도 사치이던 시절, 회비를 갹출해서라도 아이들을 서울로, 제주도로 수학여행 보내던 그 정신을 교육정책에 담아내야, 우리가 이루었던 한강의 기적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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