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한국 산문선' 9권 출간

원효부터 정인보까지…한문학자들이 엄선한 명문 613편

민음사 '한국 산문선' 9권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레가 칠 때는 모두가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뇌동(雷同)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우렛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잘못한 일을 거듭 반성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기에 그제야 몸을 펴게 됐다."

시(詩)와 문(文)에서 두루 업적을 남긴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는 우렛소리를 접한 뒤에 자신에게 허물이 있는지 살폈다는 산문을 남겼다. 그는 이 글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눈길을 떼지 못하는 작은 과오를 범했으나, 인지상정으로 여겼다고 고백했다.

이규보의 산문 '우렛소리'(雷說)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서 명문이라고 할 만한 한문 산문을 뽑아 쉬운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을 덧붙인 선집이 발간됐다. 민음사가 9권으로 펴낸 '한국 산문선'이다.

2010년 기획을 시작해 7년 만에 빛을 본 한국 산문선에는 작가 229명이 쓴 산문 613편이 실렸다. 신라의 고승 원효(617∼686)부터 민족주의 역사학자 정인보(1893∼1950)까지 시대별 인물의 산문이 시간순으로 정리됐다.

번역 작업에는 한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이종묵 서울대 교수, 정민 한양대 교수와 신진 학자인 이현일 성균관대 교수, 이홍식 성결대 교수,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6명이 참여했다.

산문 선정 기준은 사유의 깊이와 너비가 드러나고 현대인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글로, 형식성이 강하거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배제됐다.

또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주석은 뒤쪽에 모아서 싣고, 원문도 수록했다.

역자들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 이후 이 정도 규모의 산문 선집은 나온 적이 없다"며 "한문의 쓰임새가 사라지면서 죽은 글로 변한 한문 산문에 담긴 인문 정신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고 서문에 적었다.

각권 392∼508쪽. 각권 2만2천원, 세트 16만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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