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끝내 펼치지 못한 재롱잔치 - 3편
병원이 익숙한 아홉살 동환이
평범한 일상도 그저 허상으로
큰형 동현이도 동생 위해 희생

▲ 동환이는 3.75㎏, 아이가 이렇게 아플거라 예상치 못할 정도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사진은 어렸을 때 동환이 사진. 사진=홍서윤 기자
병원에 다시 돌아온 것은 동환이뿐이었다. 대전에 살고 있는 9살 동환이는 암투병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는 나이 5살때 신경모세포종이란 것이 첫 발병했고 수차례의 항암치료와 이식술을 거쳐 완치판정을 받아냈었다. 건강을 찾았다는 기쁨에 처음으로 가족여행도 떠났건만 돌아온 가족을 맞은 것은 아이의 병이 재발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동환이의 나이는 7살이었다.

동환이의 나이를 세는데는 지금도 열 손가락이 채 필요하지 않다. 그런 아이는 학교보다 병원이 익숙한 삶을 살았다. 동환이는 주위에 친구가 없다. 병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아이는 다니던 유치원에서 그만둬야했고 초등학교를 꿈꿨던 그때 다시 병원에 들어가야 했다.

누군가가 지루하다 일컫는 일상은 동환이와 가족에 쉼 없이 그려도 잡히지 않는 허상이었다. 동환이의 학교는 병원이었고 친구는 같이 입원했던 환우들이었다. 같은 시기 병동에서 만난 친구들은 어찌보면 동환이의 하루에 웃음지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모두 건강해져 다시 만났으면 좋으련만. 동환이는 이제 정말 홀로 병마와 싸우게 됐다. 다시 입원한 동환이는 병원에서 예전의 친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 경순 씨는 “동환이랑 같이 치료받았던 아이들은 이제 다 건강해져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같이 놀았던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적도 있었는데 당시 친구는 다시 머리카락을 길렀었고 동환이는 모두 빠져있던 때라 아이가 창피했는지 아는척하지 말자고 하더라”고 전했다.

부모에게는 아픈 손가락이 또 있다. 어린 나이에 감당치 못할 아픔을 겪고 있는 동환이를 간병하느라 정작 큰 아이는 소풍 도시락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큰형 동현이는 동생의 병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 부모와 떨어져 수원 이모집에 살았다. 동생이 완치판정을 받은 후에는 대전으로 전학왔지만 다시 발병하면서 현재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와 둘이서 지내고 있다. 한때는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보고싶다 울던 아이였지만 이제는 동생을 더 챙기라며 의젓하게 부모를 챙기는 형이다.

경순 씨는 “이모가 아무리 잘해준다해도 엄마만 했겠냐”며 “한창 부모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고 있는 우리 첫째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했다.

<내달 1일자 1면에 4편(종편) 계속>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후원계좌=기업은행 035-100410-01-833(사회복지법인 어린이재단)

◆후원 문의=042-477-4072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