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절주절]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데 매번 그 행복한 상상을 깨는 존재가 있다. 바로 '수능'이다.

나도 '고3'이 되기 전까진 다들 왜 그렇게 고3에 유난인지 미처 몰랐다. 막상 돼보니, 고3이란 단어는 이상하게 자꾸 '苦3'으로 들렸고, 내가 고3이란 현실을 실감하기만 하면 숨이 턱 막혔다. 부모님은 "공부해라"하고 강요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기는 그냥 그런 시기였다. 교실도 즐거운 것은 한때고, 항상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뉴스에서나, 선생님들이나 '수능'을 죽고 사는 문제처럼 치부했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수능은 그저 하나의 '시험'에 불과했다. 12년간 가방을 메며, 수없이 책상에 앉으며, 수많은 까만 글자를 보며 달려갔다. 그래서 인생의 큰 지각변동을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허무했다.

지금도 10년 전, 내 수능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일찍 누웠지만 선잠을 잤고, 평상시와 달리 알람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려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아침을 먹고, 청심환도 먹었다.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아빠 차를 타고 시험장에 갔다. 시험 시작 전, 멍한 상태에서 막간의 공부를 했다. 그 뒤 종이 울리고, 순식간에 1, 2교시가 지나 엄마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또 3, 4, 5교시가 지났고 감독 선생님의 "고생했다"라는 말을 끝으로 교실을 나섰다(솔직히 이때의 나는 재수해야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다들 들어갈 때완 다르게 시끌벅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와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고, 수능 난이도를 평가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귀가했다(또 재수를 생각나게 하는 수능 총평이었다. 뭐 맨날 누구 맘대로 평이하대). 그리고 시험지는 가방에서 꺼내지 않은 채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푹 잤던 것 같다. 그 후 한참이 지나서 가채점을 하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등급 커트라인을 보며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내가 본 2008수능은 유일하게 '등급만 나오는 성적표'였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우리 학번은 '등급제의 희생양'이란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년에 신입생이 될 18학번 앞에 08학번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에 신종플루, 메르스, 세월호 사건을 겪어왔고, 지진 탓 수능까지 일주일 미뤄진 수난의 1999년생들. 일주일이 미뤄진 만큼, 더 초조하고 더 부담됐을 동생들에게 완주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수능의 다음 날인 오늘, 우울한 친구들도 있고, 홀가분한 친구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경험자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진짜 수능이 전부가 아니란 거다.

물론 '대학'을 결정하는 시험은 맞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인생을 결정짓는 '대답'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수능 때문에 힘든 일은 인생의 작은 아픔일 뿐이다. 지나고 나면 더 힘든 일도,더 기쁜 일도 많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위해서라도수능의 늪에 빠져있지 않길 바란다.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많다. 특히 스무 살부터가 진짜 재밌다. 여러 힘든 고개를 넘어온 만큼 18학번 친구들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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