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중 근 충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특별기고] 

앞선 칼럼에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을 다뤘다. 다음으로 다루고 싶은 것은 자살시도자에 대한 편견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살이 성공하기까지 약 20번 정도의 자살시도를 한다고 한다. 자살시도를 한 사람은 그만큼 다시 자살시도를 할 확률이 높다.

자살시도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계속 살아남아 있을지 아니면 세상을 떠날지를 계속 고민한다. 마치 살아남을 이유와 세상을 떠나야 할 이유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서, 기우는 쪽으로 결정을 한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살아남을 이유가 많게 기울면 살아남기로 하고, 어느 날 살아남을 이유보다 세상을 떠날 이유가 많게 기울면 세상을 떠날 시도, 즉 자살시도를 반복하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시도에 실패하고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살아남았을 때 세상을 떠나는 쪽으로 다시 기울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살시도자에 대한 편견이다.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태도가 이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빼앗는다. 즉 편견이 자살시도의 반복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자살시도자에 대한 편견을 벗는 것은 중요하다.

자살 시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은 자살 고위험군으로 우리 사회가 잘 돌보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나쁜 사람도 아니고 우리와 다른 사람도 아니다. 힘겨워하는 한 인간으로서 주위의 위로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암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을 죽음의 자연스러운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는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살시도자나 자살을 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후술하겠지만 자살자의 유가족은 누구보다 사회의 돌봄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임에도 자살한 사람에 대한 편견 때문에 어디서 말을 할 수도 없고 위축되어 있게 된다.

자살을 자연스러운 죽음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맞다. 단 우리나라처럼 너무 자살률이 높은 것이 문제이다. 마치 암이 죽음의 자연스러운 한 형태이지만 암 사망률이 너무 높으면 그 것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암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 금연 운동도 하고 검진 사업도 하는 것처럼, 자살예방사업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루고 싶은 것은 자살자 유가족에 대한 편견이다.

자살자의 유가족은 일반인들보다 자살을 할 확률이 훨씬 높다. 연구에 따라서 4배~10배 정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가족을 자살로 잃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다. 특히 자식을 잃은 경우 그 사무치는 아픔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유가족의 고통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 분노, 슬픔, 후회, 죄책감, 그리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얽혀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자살자 유가족들에게 하는 섣부른 위로나 충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잃은 아픔도 견디기 힘든 고통일 텐데, 사회마저 편견어린 시선으로 유가족을 바라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자살자에 대한 편견이 심한 나라라서 유가족들의 마음이 더욱 아프다. 유가족이 편견 때문에 자신의 힘듦을 말할 수 없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유가족 자조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데, 유가족의 고통은 유가족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조 모임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주위에 자살한 이의 가족을 알고 있다면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041-633-9185)로 안내해 주기 바란다. 아울러 주위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편견을 벗겨주어서 치료를 받도록 해주기 바란다.

편견을 벗기는 것은 언론의 역할도 크지만 우리 국민 한명 한명의 역할도 크다. 편견 없는, 그리고 자비로운,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쉽게 표현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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