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요법·강렬한 반전 효과…"처음부터 다시 이야기 생산할 수 있어"

내 주변에는 없는데 드라마에서는 흔한 병은?

답이 '기억상실증'이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을 듯하다.

화제의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과연 '기억상실' 카드를 쓸 것인가가 이번주 방송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올해 TV 최고 시청률 37.9%를 기록한 '황금빛 내 인생'의 지난 12일 방송 마지막 장면에서 비롯된 궁금증에 시청자가 몸이 달아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시청자 대부분이 주인공의 '기억상실증'을 '확신'하고 있고, 그에 대한 반대와 실망을 토로한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에 기억상실증이 사골 우려먹듯 등장했던 것을 꼬집으며 '황금빛 내 인생'도 그러한 충격요법을 쓸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혀를 차고 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기억상실 카드를 얼마나 써먹었길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 연속극의 필수 요소?…사건과 인물관계 복잡하게 만들어

아침과 저녁 일일극, 주말극까지 연속극에서는 기억상실이 필수 요소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길게 끌고 가느냐, 단기간 써먹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긴 호흡의 연속극에서 기억상실은 사건과 인물들의 관계를 꼬이게 했다가 풀어내는 데 아주 유용하고도 손쉬운 장치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아침 연속극에서는 주로 한 남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부인과 내연녀 사이에서 방향을 잃어버리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SBS '두 아내'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부남이 실종에 이어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본의 아니게 두 집 살림을 하게 되는 KBS '아내'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 제작사 대표는 15일 "기억상실이 진부하다고 욕을 먹지만 드라마에서 극성을 높이는 장치로는 가장 효과만점"이라며 "시청자들도 욕을 하면서도 그런 극적인 상황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 교통사고·유괴로 인한 기억상실이 가장 빈번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교통사고다. 어린 시절 유괴나 실종 등에 따른 트라우마로 기억상실증이 생기는 경우가 그 다음이다.

MBC '쇼핑왕 루이', SBS '돈의 화신'과 '천국의 계단',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KBS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등이 대표적인 작품.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는데, 실종까지 되면서 재벌가 일원인 주인공이 거지가 되거나 고아가 되는 극적인 반전이 동반된다.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KBS '겨울연가' 역시 '욘사마' 배용준이 맡았던 '준상'이 교통사고로 학창시절 추억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는 이야기를 후반부 전개했다.

배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MBC '환상의 커플'과 '신들의 만찬'은 배에서 떨어져 기억을 잃는 것으로 설정했다. '신들의 만찬'은 모녀가 동시에 기억을 놓아버리는 설정이기도 했다.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MBC '왔다! 장보리' 등 대박을 친 주말극에서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유괴나 실종의 경험으로 기억을 잃으면서 가족과 헤어져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SBS '찬란한 유산'은 식품기업 회장인 할머니가 경미한 치매 증상 속 잠깐씩 오락가락하다 어느 순간 기억을 잃으면서 졸지에 가난한 '독거노인'이 돼버린 내용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 특정 기간만 기억 못하기도…시청자 궁금증 고조

SBS '피고인'과 '신사의 품격' '시크릿 가든' 등은 특정 사건, 특정 기간만 기억을 못하는 주인공을 내세웠다. 약물이나 쇼크,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현상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KBS '브레인'이나 MBC '더킹투하츠'의 경우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 기억상실에 걸렸는데, 둘 다 지워버리고 싶은 어떤 순간에 대한 괴로움으로 특정 순간만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들 드라마는 그러한 기억상실을 유발한 특정 순간이 무엇이었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동안 극을 끌고 나갔다.

사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MBC '해를 품은 달'과 '아랑사또전'에서도 주인공이 기억상실에 시달린다.

판타지인 SBS '주군의 태양'과 '푸른 바다의 전설', tvN '도깨비' 등도 기억상실을 극 전개의 주요 코드로 써먹었다. 이 경우는 절대자의 필요에 따라 특정 기억이 삭제되는 식이었다. 예기치 않은 기억상실이 아니라 의도된 기억상실이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드라마 속 기억상실의 빈번한 등장은 일단 지워버리고 싶은 게 많은 현대인의 내밀한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이어 "기억상실을 활용하면 드라마 상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이야기를 많이 생산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황금빛 내 인생'에는 예상(?)대로 기억상실이 등장할까.

'황금빛 내 인생'의 배경수 KBS CP는 "요즘 대본 유출 사고가 많아 스포일러로 피해를 보는 드라마들이 많다"며 "방송을 통해 확인해달라"고 말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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