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연 공주대학교 겸임교수
[수요광장]

최근 들어 지방을 많이 오가면서 주로 국도를 이용한다. 전에는 업무가
있어 지방에 갈 때나, 고향에 다녀올 때면 언제나 고속도로와 같이 했다. 그것은 빠르다는 구실도 있지만 국도가 불편하다는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이 비정상에게 밀리는 것과 같이 국도가 잘 정비돼 있음에도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음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과 동행해 지방 나들이를 할 때다. 이치로 보아 마땅히 고속도로로 들어서야 하는데 톨게이트를 지나쳐 달리고 있었다. 엉겁결에 “어디로 가는 거야? 고속도로로 가야지!” 조급한 마음에 의아스럽게 물었다. 그랬더니 가끔은 국도도 다녀보는 것이 좋다며 가다보면 볼거리가 많단다. 쉬엄쉬엄 가야지, 서두를 필요 있느냐고 반문하며, 봄에는 싹트는 즐거움을, 여름에는 자라나는 충만함을, 가을에는 결실의 보람을, 겨울에는 기다림을 맛볼 수 있으니 다녀보면 고속도로와 또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생소한 길을 달리니 자연 눈동자가 좌우로 바쁘게 움직였다. 국도의 요모조모를 보면서 산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음을 보라 했거늘 그 후 몇 번의 국도를 이용한 후 삶에 여유로움은 먼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고, 배움이란 듣고 보고 몸으로 겪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터득하는 계기가 됐다.

고속도로는 어찌 보면 시간경쟁을 하는 것 같았다. 여유를 가질만한 틈이 없었다. 국도를 이용하다보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철 따라 변하는 풍경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요즘 같이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는 단풍이나 붉게 매달린 과일을 보면서 넉넉함에 절로 흐뭇해졌다. 그 뿐인가, 통행료가 절약되니 왠지 뿌듯해진 감정도 숨길 수 없었다. 시간경쟁에서도 그리 뒤지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목적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나지 않으니 시간에 대한 염려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시간과 손잡고 간다면 좋은 벗이 될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에서는 시간의 속도가 어긋나지만 시간과 손을 마주잡고 함께한다면 시간은 말없는 스승이 되기도 한다는 성찰에서 시간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는 계기가 됐다.

어느 모임에서 후배가 정년 때문에 부사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한데 앞으로 가야할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후배는 그 막강한 힘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런 짐 한 번 등에 져 봤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이라면 삼가야 한다. 그런데도 말을 하다보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목소리가 커지고, 목소리가 커지면 부딪쳐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서 진리란 어느 것일까? 상상에 나래를 펼치는데 옆에 있던 선배가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들어본 말이기에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맡은 책임이 무겁고 가야 할 길이 멀다”라는 뜻이란다. “맡은 책임이 무겁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맡은 책임이 무거워 해야 할 일이 끝도 보이지 않는데 중도에 접어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가늠해본다.

내가 힘들 때는 상대도 힘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과관계에서 모두를 잘 품어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직면해 있는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는, 일이 많아 하기 싫다고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책임을 다하는 풍토가 마련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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