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포문화숲길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당진·서산·홍성·예산 등 4개시·군에 걸쳐 있는 탐방길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 내포문화숲길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당진·서산·홍성·예산 등 4개시·군에 걸쳐 있는 탐방길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 '백제부흥군길'에 속하는 20코스는 대덕산 입구에서 아미산과 몽산을 거쳐 면천읍성에 이르는 12.5㎞ 구간이다.
▲ '백제부흥군길'에 속하는 20코스는 대덕산 입구에서 아미산과 몽산을 거쳐 면천읍성에 이르는 12.5㎞ 구간이다.
▲ 공동묘지와 억새 너머로 당진의 최고봉인 아미산, 아미산과 다불산을 이어주는 구름다리, 다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 공동묘지와 억새 너머로 당진의 최고봉인 아미산, 아미산과 다불산을 이어주는 구름다리, 다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 가마솥 형상의 복부산(伏釜山)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도리봉 소나무'. 2016년 당진시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됐다.
▲ 가마솥 형상의 복부산(伏釜山)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도리봉 소나무'. 2016년 당진시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됐다.
▲ 몽산에는 산꼭대기 능선을 따라 조성한 테뫼식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내판을 통해 성곽의 역사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 몽산에는 산꼭대기 능선을 따라 조성한 테뫼식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내판을 통해 성곽의 역사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 성의 방어·감시·통신·지휘를 위해 구릉부에 설치한 제3망루 추정지에서는 순성면 성북리의 잣디저수지를 볼 수 있다.
▲ 성의 방어·감시·통신·지휘를 위해 구릉부에 설치한 제3망루 추정지에서는 순성면 성북리의 잣디저수지를 볼 수 있다.
▲ 옛 면천군의 문루인 풍락루. 1851년 당시 면천군수인 이관영이 새롭게 지어 '豊樂樓'(풍락루)라 명명했다.
▲ 옛 면천군의 문루인 풍락루. 1851년 당시 면천군수인 이관영이 새롭게 지어 '豊樂樓'(풍락루)라 명명했다.
[연합이매진] 백제부흥군 숨결 가득한 내포문화숲길

(당진=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내포(內浦)는 바다나 호수가 뭍으로 파고든 지형으로 조선 초기 이후 충남의 서북부 지역을 뜻한다. 조선 시대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에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개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壬辰)과 병자(丙子)의 두 차례 난리도 여기에는 미치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다.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고 기록돼 있다.

내포문화숲길은 내륙 깊숙이 발달한 하천을 이용한 상거래와 문화의 전파가 왕성했던 내포문화권(서산시·당진시·홍성군·예산군)의 자연경관과 생태자원, 역사·문화 유적을 잇는 327.3㎞ 구간으로, 충남에서 가장 길게 조성된 도보길이다. 이 길은 '원효깨달음길' '백제부흥군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내포역사인물동학길' 등 4개의 테마, 24개 코스(311.3㎞)와 2개 지선(16㎞)으로 이뤄진다.

안중신 내포문화숲길 팀장은 "내포지역을 한 바퀴 에두르는 내포문화숲길은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에 버금가는 도보여행길"이라며 "제각각 품은 풍경과 역사 이야기는 다르지만 걷는 내내 청정자연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백제부흥군길'에 속하는 20코스는 대덕산 입구에서 아미산과 몽산을 거쳐 면천읍성에 이르는 12.5㎞ 구간으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홍성 오서산의 장곡산성(주류성), 예산의 봉수산 임존성을 거쳐 당진의 아미산까지 이어지는 '백제부흥군길'은 총 8개 코스로, 백제를 지키려는 민초들의 숱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서기 660년 7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된 이후 임존성과 주류성을 거점으로 한 백제부흥운동은 무려 3년 넘게 이어졌다.

◇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숲길

이번 탐방은 당진읍 채운리에 위치한 대덕산 입구를 들머리로 삼아 시작한다. '20코스 백제부흥군길' 안내판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어린 시절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던 호젓한 산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흙길 오솔길이어서 걷기도 좋고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와 상수리, 낙엽들이 가을 산의 고즈넉함을 넉넉하게 보여준다.

느릿느릿 걷다 보면 산행하는 사람과 마주치고, 야트막한 뒷동산이지만 숲이 제법 울창하다. 소나무뿐만 아니라 상수리나무·신갈나무 등이 무성하게 가지를 위로 뻗치고 있다. 갈림길에 설치한 이정표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겹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이 길은 무너지는 나라를 되찾으려던 민초들의 숨결뿐만 아니라 아미산과 대덕산 자락에서 나무를 해 내다 팔던 고단한 산골 마을의 일상이 스며 있다. 나뭇짐을 나루까지 밤새 지게로 지어 나르고 배에 실어 인천으로 운반해서 팔고, 돌아오는 길에 나무를 판 돈으로 새우젓을 사서 되파는 '양글(이모작) 장사'를 했다.

억척스레 일구어왔던 고단한 산골 마을의 삶을 생각하며 걷다 보면 사용종료 비위생매립지를 공원화한 대덕공원에 닿는다. 농구장과 공중화장실이 설치된 공원을 지나면 고개가 높아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눈티고개다. 본래 '녹운치'(綠雲峙)로 부르던 것이 '노운치'로 변하고 이것이 눈치 즉 서리로 변해서 현재는 '눈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당진에서 면천으로 가는 눈티고개길은 해미로 가는 길과 함께 큰 대로에 속해 당진지역에서 가장 큰 서낭당이 있었다. '눈티고개 서낭당' 안내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고개를 넘어 능선을 따라가면 정자 '다락정'이 '발품을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주변에 하늘걷기·허리돌리기·옆파도타기 등의 운동기구가 설치된 정자에 앉아 그저 숲에 있다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정자를 등지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가면 농작물 채취 금지 안내판, 서해안고속도로와 마주친다.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을 마주 보고 왼쪽으로 200m 정도 가서 다시 오른쪽 논둑길을 150m가량 걷는다.

이정표를 따라 좁다란 산길을 오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도리봉 소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는 가마솥 뚜껑의 손잡이 모양을 하고 있는데, 2016년에 당진시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됐다. 조선 인조 때 청주한씨 문정공파 19대손 백영공이 죽동2리(옛 엄치리)에 입향해 청주한씨 집성촌을 이뤘다. 입향조(백영공)가 이 산에 묻힌 이후 후손들이 "사람이 태어난 근본을 알고 조상을 잘 섬기며 그리는 마음을 지니는 효성과 결초보은의 예를 다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는 것을 늘 잊지 말고 일깨우는 뜻으로 '도리봉'(道理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 미인 눈썹같이 아름다운 아미산

오랜 세월 동안 후손들이 사람의 도리를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았던 소나무 아래서 길동무와 세상사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걷는다. 죽동2리의 대숲을 거쳐 당진의 최고봉인 아미산(峨嵋山·349m)으로 들어선다. 멀리서 보면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처럼 산세가 험하지 않고 곱다. 탐방로도 흙길과 나무 덱, 돌길, 오르막과 내리막길 등 다양해 산행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정상인 3봉과 2봉의 갈림길에서 누각 '아미정'이 세워져 있는 3봉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소나무 가지에 눈 내린 설경이 으뜸인 제2봉을 밟는다. 먼 곳에서 아미산을 바라보면 2봉이 '사람의 코처럼 보인다' 하여 '코생이'라 불리는 이곳에 서면 사방으로 시야가 터진다. 가까이는 다불산(多佛山·321m)과 낮은 산릉들, 저 멀리는 서해와 합덕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해인 수녀의 '사랑은 나무와 같다'를 비롯해 허영자의 '긴 봄날', 홍금자의 '그리움' 등 유명 시인의 시(詩)를 써놓은 팻말을 따라 쉬엄쉬엄 길을 따라가면 아미산과 몽산(夢山·225m)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만난다. 당진 외국어교육센터를 지나면 낙엽이 두껍게 깔린 길 양편으로 자작나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르나 젖으나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자작나무 사이로 상큼한 바람이 분다. 길이 그렇게 길지 않고, 자작나무도 그리 많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또 다른 이국적 풍경과 숲 내음이 탐방자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해준다.

자작나무길을 지나면 일제강점기에 t당 금 함유량이 높아 노다지로 소문났던 금광동굴이 눈에 띈다. 지금은 폐광되어 쓸쓸한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정표 '면천읍성 4.09㎞, 승전목 6.5㎞. 대덕산 입구 8.11㎞'를 지나 임도와 산길을 따라간다. 청량한 공기를 벗 삼아 산길을 오르면 테뫼식 산성인 몽산성 터에 이른다.

삼국사기에선 백제에 의해 활발히 축조된 성곽이라 전하며, 그 형태는 몽산의 7∼8부 등고선을 따라 산을 한 바퀴 두른다. 성을 구축했던 흔적과 상주도 없이 구천을 헤매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해 제사를 지냈던 여단 등이 남아 있고, 안내판을 통해 성의 역사·성의 분류·성문의 형식·공성 무기 등을 배울 수 있다. 풀꽃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미산과 몽산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고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었다.

백제부흥 전쟁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던 몽산성을 뒤로 하고 면천읍성으로 향하면 성의 방어·감시·통신·지휘 등을 위해 구릉부에 설치한 제4망루의 추정지를 시작으로 제3, 제2, 제1 망루 추정지가 이어진다. 망루 추정지마다 보이는 풍경과 운치가 색다르다.

8개의 망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몽산에서 하산해 옛 면천 관아의 문루인 풍락루(豊樂樓)와 고려 개국공신이자 면천 복씨 시조인 복지겸의 딸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51호) 두 그루를 지나면 20코스의 종착점인 면천읍성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면천읍성은 1438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평지 읍성으로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었다. 현 성벽의 둘레는 1천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는 1천564m로 추정된다.

현재 면천읍성은 서산의 해미읍성처럼 객사와 동헌 등 관아는 물론 성곽과 성문 등을 2020년까지 복원할 계획이다. 동네 뒷동산의 호젓한 오솔길을 거니는 듯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지만 면천읍성에서 출발지로 되돌아가는 교통편이 다소 불편하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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