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봉 충북NGO센터장
[화요글밭]

독일 출신의 철학자 한나 아랜트(Hannah Arendt)는 “폴리스는 지리적으로 자리 잡은 도시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폴리스는 사람들이 함께 행위하고 말함으로써 발생하는 사람들의 조직체이다. 그래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너는 폴리스가 될 것이라는 말로 도시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도시는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물질적 가치 증식의 수단이자 경제적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도시의 정체성과 도시다움에 대한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개별 토지 주택소유자만의 문제가 아닌 무주택자에서부터 공적가치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재개발·재건축이 도시의 매력을 낮추고 원주민을 거리로 내몰며,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도 담보하지 못하는 파국적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다행히도 청주시는 최근 도시·주거환경 정비구역 해제절차를 완화하는 '정비구역 등의 해제기준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핵심내용은 토지 등 소유자 40% 이상이 정비구역 해제를 신청한 경우 청주시가 서류의 적정 여부를 검토한 뒤 바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로 넘기는 등 해제 절차를 단순화 한다는 것이다. 또 추진위나 조합이 설립된 후 1년 이상 위원장과 조합장 공백으로 운영이 중단되거나 총회를 2년 이상 열지 않은 지역의 경우는 시장이 해제를 검토·판단한 후 주민설명회 개최, 주민의견 조사(60일),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해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정비구역 지정으로 고통받는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환영할 만한 제도 변화라 할 수 있다.

청주시는 이 같은 개정안을 시민의견 의견 수렴절차를 거쳐 내년 초 고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청주지역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구역은 재개발 9곳, 재건축 2곳, 도시환경정비사업과 주거환경개선 각 1곳 등 모두 14곳이다. 이들 지역은 10년 넘게 각종 증·개축 제한, 도시가스 공급 제한으로 인한 슬럼화와 난방비 부담이라는 2중, 3중의 고통을 받아왔다.

아쉬움도 있다. 정비구역 해제를 위해서는 매몰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매몰비용에 대한 지원확대 방안도 함께 제시돼야 제도 개선의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갈등과 원주민 재정착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원도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훼손하고 도시를 획일화된 아파트 숲으로 개조하는 것에 있다. 현재의 계획대로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되면 청주는 매력 없는 도시가 될 것이 너무도 명확하다. 관계의 단절을 상징하는 아파트만 무성하게 자라난 도시에서 시민들은 어떤 감동과 감성적 자극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도심의 낙후된 주거환경은 개선돼야 하지만, 전면 철거나 재개발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정부정책도 도시재생으로 옮겨왔다. 도시의 역사와 매력은 고층빌딩과 아파트를 통해서는 높아지지 않는다. 진정한 도시다움은 김승수 전주시장의 주장처럼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리더의 명확한 방향제기가 중요하다.

청주다움이 무엇인지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공직자, 지방의원, 시민단체, 그리고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주민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이다. 도시는 그곳을 살아온 사람의 역사기에 직선이 아닌 곡선이며, 기억의 재생이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100년 전 청주에 사람이 살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역사와 문화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우를 범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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