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쿠르·르노도·페미나상, 역사적 사건서 영감 얻거나 직접 다룬 작품에 돌아가
메디치 외국문학상에 한강 '희랍어 시간' 후보 올랐지만, 이탈리아 작가가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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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추방돼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파리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2차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추방돼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올해 프랑스 문학상 수상 경향 들여다보니…역사가 대세

공쿠르·르노도·페미나상, 역사적 사건서 영감 얻거나 직접 다룬 작품에 돌아가

메디치 외국문학상에 한강 '희랍어 시간' 후보 올랐지만, 이탈리아 작가가 수상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올해 프랑스 4대 문학상 선정이 메디치상 발표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올해는 주로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서 영감을 얻거나 이를 르포르타주 기법으로 다룬 작품들이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들을 휩쓸었다.

메디치상 선정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야니크 하에넬(50)의 '왕관을 움켜쥐어라'(Tiens ferme ta couronne)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작품은 소설 '백경'(Moby Dick)을 쓴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의 삶을 다룬 영화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이를 영화화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실존 인물인 영화감독 마이클 치미노,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닮은 호텔 직원, 사냥의 여신 디아나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주인공의 만남 속에서 삶의 희극적 요소 아래 감춰진 진실과 성스러움에 대한 지적인 탐험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이 최종 후보작 12편에 올라 관심을 끈 메디치상의 외국 문학 부문은 이탈리아 작가인 파올로 코녜티의 '여덟 개의 산'에 돌아갔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희랍어 시간'은 프랑스에서 올해 8월 번역·출간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명한 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 한강의 작품세계를 프랑스 평단이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프랑스의 또 다른 문학상인 페미나상은 하루 전인 8일(현지시간) 필리프 자에나다(50)의 논픽션 '도끼'에 돌아갔다.

'도끼'는 1941년 나치의 프랑스 괴뢰정부인 비시정권 하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사건을 추적한 일종의 르포다.

비시정부 고위직의 아들이었던 앙리 지라르는 아버지와 숙모, 가정부를 가족 소유의 성에서 도끼로 무참히 살해한 혐의를 받아 구속됐지만, 해방 이후 무죄로 석방됐다. 이후 남미로 이주했던 지라르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조르주 아르노라는 예명으로 소설을 발표했고, 이브 몽탕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기자 출신인 작가는 76년 전의 사건과 그 이후 전개과정을 추리소설적 기법의 예리한 필치와 관찰력으로 추적한다.

앞서 지난 6일 올해의 공쿠르상(Prix Goncourt) 수상의 영예는 에릭 뷔야르의 역사소설 '일일명령'(L'ordre du jour)이 차지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을 다룬 작품으로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버무려 1차대전 이후 2차대전 발발 직전까지 혼란 속의 독일을 살던 인간 군상의 기회주의와 공포심, 무력감 등을 그렸다.

160쪽으로 경장편 또는 중편으로 분류될 만한 이 작품은 히틀러가 1933년 독일의 산업을 이끌던 경제인들과 가진 비밀 회동을 중요 사건으로 다루고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본다.

프랑스어의 제목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일정표', '일일명령'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영역판 제목도 같은 뜻의 '어젠다'(Agenda)로 번역됐다.

공쿠르상 수상작 외의 후보 중에 상을 주는 르노도상은 공쿠르상 발표와 같은 날에 올리비에 게즈의 '요제프 멩겔레의 실종'에 돌아갔다.

이 역시 나치 친위대장교이자 의사로 2차대전 당시 악명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담당자였던 실존 인물 요제프 멩겔레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이다.

흔히 프랑스의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공쿠르·르노도·페미나·메디치상 가운데 올해는 3개의 상의 수상작이 2차대전 당시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치욕과 암흑의 시기를 전부 혹은 일부로 다룬 것이 특기할 만하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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