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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충청로-에필로그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2017년 11월 09일 목요일 제23면     승인시간 : 2017년 11월 08일 19시 20분
[고마웠습니다]

▶대학시절 자그마한 시(詩) 문학상을 받고 등단했다. 객기가 넘쳐 자주 대취했고, 정신적 허방에 빠져 헤맸다. 시상(詩想)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세상을 주유하듯 긁적였다. 그러나 시는 '밥'이 되지 못했다. 도처에 가난이 보였다. 배고픈 미래가 확연히 그려졌다. 더구나 시는 쓰면 쓸수록 가식적인 언어가 됐다. 가령 '사랑은 이기적'이란 간단한 말조차도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며 언어유희에 젖었던 것이다. 글이 글을 속이니, 위선적인 창작이었다. 시(詩) 100편을 마친 어느 날, 시 100편을 모두 불태우고 절필했다.

20년하고도 한참 전에,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충무로를 기웃거렸다. 영화가 애인처럼 좋았다. 치명적인 짝사랑이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결혼할 여자집안에서 파혼을 들먹였다. 극장을 택하느냐, 결혼식장을 가느냐의 갈림길에서 결국 사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영화 꿈을 접었다.

▶기자가 되고 '글'이 '밥'이 됐다. 하지만 밥벌이를 위한 글은 썩어있었다. 글이 아니라 밥과 맞바꾸는 알량한 거래였다.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글 쓰는 일이 노동의 일부가 되자 글은 쓰여지지 않았다. 자기만 만족하는 글은 피드백이 없는 법이다. 자화자찬의 껍데기다. 어떻게 쓸까 장고에 들어갔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연민했다. 미웠던 감정을 추스르자 용서가 됐다. 결론은 온기(溫氣)였다. 글에 따뜻함을 담고자 노력했다. 물론, 글이란 남을 위로해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본인이 치유 받는 것이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고, 남을 이해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이해받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글에서 온기가 느껴질 즈음 내 글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충청로'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쓴 게 벌써 10년이다. 매주 한차례씩 500회를 채웠다. 원고지 4000매 분량이니 책으로 묶으면 3~4권 정도다. 따뜻하게 읽어준 독자가 제법 있었다. 당연히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해 어느 봄날, 울먹이던 어느 여성 독자(讀者)의 피드백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살이가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가 칼럼을 읽은 후 생명줄을 잡았다고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감동을 받은 건 내 쪽이었다. 감동은 완전한 동감이다. 1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글쓰기도 오래하면 글에 근육이 생긴다. 자평하건대, 어느 샌가 글에서 온기(溫氣)가 빠졌다고 생각한다. 지친 글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500회는 그 임계점이다. 글은 잘 쓰는 것 못지않게, 못난 글을 피하는 법 역시 중요하다고 믿는다. 언젠가 내 글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 칼럼을 접기로 했다. 같은 시선에는 함께 갈 길이 보인다. 10년간의 기억이 추억으로 치환되고 있으니 난 행복한 사람이다.

※독자여러분, 고마웠습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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