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업계 "유효경쟁 위해 KT 보유설비 업계간 공유해야" 압박
KT는 부정적…"국가 기간망인 유선설비 투자 위축 부를 것"

▲ 연합뉴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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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이동통신 5G 도입을 앞두고 통신 필수설비 공유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또한번 불거질 조짐이다.

국회와 정부까지 나서 설비투자 효율화를 위해 KT가 보유한 필수설비를 공동활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KT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 5G 구축에 필수적인 통신설비 대부분 KT 보유…"같이 쓰자"

5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감에서 필수설비 공유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필수설비는 전주(전봇대), 광케이블, 관로 등 전기통신사업에 필수적인 유선설비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KT와 한국전력이 대부분의 필수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KT가 보유한 전주는 전체 전주의 93.8%, 관로는 72.5%, 광케이블은 53.9%에 달한다. 여기에는 KT가 2002년 민영화 이전 한국전기통신공사 시절부터 보유하던 설비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다른 통신사는 KT에 신청하면 필수설비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의무제공 대상이 아닌 경우 제약이 따른다.

지난달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국정감사에서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황창규 KT 회장에게 "필수설비를 공동으로 쓰면 유효한 경쟁 체제를 만들 수 있다"며 필수설비 공유 확대 의사를 물었지만, 황 회장은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황 회장은 "설비 제공은 투자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유·무선 밸런스를 파괴하고, 기간 인프라를 상당히 위축할 위험이 있다"며 "국가적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비를 타사에 제공하게 되면 다른 사업자들이 나서서 망 구축에 투자할 요인이 줄고, 더 나아가 국가 기간망인 유선 설비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1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도 "세계적으로 인프라 공유가 얘기되는 가운데 KT가 열쇠를 쥐고 있다"는 도이체방크의 지적이 나왔지만, KT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필수설비가 KT에 집중돼 다른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업계 내 경쟁과 투자가 위축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KT는 탄탄한 설비 인프라를 바탕으로 초고속인터넷과 유선전화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지난 9월 유선 시장에서 경쟁 제한으로 인한 소비자 편익 손실이 연간 847억원(추정)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KT 설득 나선 정부 "공유해야"… "무임승차 우려" 반대 목소리도 커

KT에 따르면 지난해 필수설비 제공률은 신청 건수 대비 96%에 달한다. 하지만 업계의 목소리는 다르다. 각종 제약으로 인해 신청조차 어렵단다.

정부 고시에 따르면 KT는 여유 설비가 부족하거나 자사 서비스에 하자가 우려되는 경우 공동 활용을 거부할 수 있고, 설비 구축 시점이 3년을 지나지 않거나 2006년 이후 구축한 광케이블은 공동 활용할 의무가 없다. 4G 등 이동통신 서비스에 활용하는 경우도 의무제공 대상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2009년 KT와 KTF 합병 논의 당시 필수설비가 대표적인 경쟁 제한 요소로 꼽히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사업자가 전주 등 필수설비를 새롭게 확보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공동활용을 신청한 전체 구간 중 일부에서 공유가 안 되면 전체 구간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전했다.

최근 5G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필수설비 공유 주장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5G 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 유선설비를 활용해야 하는데 필수설비 공유를 확대해 국내 통신업계의 5G 투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제외된 이동통신을 의무제공 대상에 포함하는 게 핵심으로 꼽힌다.

이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5G 조기 구축을 위한 필수설비의 효율적 활용을 세부 과제로 포함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관련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도 30일 국감에서 "5G 투자를 위해 필수재 인프라를 공동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며 "KT가 전향적으로 협의하고, 정부도 설득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신업계의 '무임승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금까지 한국이 초고속 통신망을 빠르게 구축할 수 있던 배경은 업체 간 설비투자가 치열했기 때문인데 설비 공유가 늘어나면 망 투자에 소홀히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5G 구축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KT 관계자는 "5G 조기 구축을 위해서는 기술 표준화와 주파수 할당 등 우선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많다"며 "필수설비 공유 확대에 앞서 투자 유인과 시장 경쟁 상황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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