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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천안시자원복지회장 “배 곯으며 다짐했던 봉사인생 40년… 여생에도 이어갈 것”

이재범 기자 news7804@cctoday.co.kr 2017년 11월 03일 금요일 제11면     승인시간 : 2017년 11월 02일 19시 17분
천안 성환면서 자라 8살때 6·25전쟁, 굶으며 어머니께 “베풀며 살겠다” 약속
복지회 구성 매년 고구마로 이웃돕기, 참된봉사 인정 국가원로회 위원 선정, 2016년엔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 참된봉사는 마음서… 돈 보다 물품지원, 쓸쓸한 이웃,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길

▲ 홍수영 천안시자원복지회장. 천안=이재범 기자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일부 기부단체와 민간인이 국민들로부터 모은 후원금을 횡령하거나 엉터리로 관리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기부 문화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정작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 주변의 소외계층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천안시자원복지회 홍수영(75) 회장이다.

이에 충청투데이는 수십년에 걸친 봉사활동의 공로를 인정 받아 국가원로회 위원까지 선정된 홍 회장을 만나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와 참된 봉사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 굶기를 밥먹듯 하던 유년 시절

“어린시절 6.25 사변을 겪으며 배 고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제가 커서 밥 한그릇이 생기면 반 그릇을, 두 그릇이 생기면 한 그릇을 봉사하는데 쓰겠다고 어머니께 약속했습니다.”

홍수영 회장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천안시 성환면 363 남상동이라는 곳이었다.

그는 지금 성환읍이 된 곳이다. 그가 태어나고 8살 됐을 때 한국에서는 6.25 사변이 발생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논과 밭의 작물들이 말라죽고 풀뿌리 하나 살아남지 못하는 등 수 년 동안 흉년이 계속됐다. “벼도 콩도 다 말라죽었어요. 그러니까 뭐하나 먹을 것을 건져내기 어려웠죠. 굶기를 밥먹듯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밥을 먹으려고 하면 쌀독에 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모님 친구집이나 집안에서 쌀 한되를 얻어오면 모두 밥을 해 먹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빼서 흰 죽을 쒀서 먹었습니다. 그냥 먹으면 아무런 맛이 안나니까 당시에 흔한 사카린을 사다가 타서 먹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먹은 흰죽은 소변을 보면 배가 꺼질 정도로 형편 없었다.

어린 시절 홍 회장은 고생을 밥먹듯이 했다고 한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렇게 유년 시절을 보낸 홍 회장은 어머니에게 자신에게 생긴 일부를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가겠다고 약속했다.

◆ 사탕장사하며 모은 돈으로 봉사 시작

홍 회장이 13살이던 어느 날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장사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동년배들보다 말도 똘똘하게 잘하고 명석했던 그를 지켜본 이웃 아저씨의 제안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성환시장 인근에 있던 사탕공장에서 물건을 받아다가 장터에 판을 깔아 놓고 ‘눈깔 사탕’을 팔기 시작했다. 미숙하지만 장사를 시작해보니 재미가 들렸다. 당시 어린아이가 돈을 만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수중에 돈이 들어오는 재미에 장사를 꾸준하게 했다.

성환시장에서 시작해 둔포, 천안, 입장, 평택, 다시 성환시장으로 6일간 시장판을 돌면 사탕장사를 했다. 그의 나이 16살이 되던 해까지 장사는 이어졌다. 그러자 수중에 어느 정도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 이웃에 살던 아저씨가 땅을 사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고, 홍 회장은 그때까지 모아진 돈으로 논 여섯 마지기(1200평)를 구입했다. 이게 홍 회장이 봉사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자신의 땅에서 쌀과 작물을 수확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 자원복지회 구성… 본격 봉사활동 나서

홍 회장이 천안시 자원복지회(옛 미륵사 자원복지회)를 구성한 것은 40여 년이 됐다고 한다. 이전부터 어머님이 다니던 절의 스님이 시주로 들어오고 남은 것을 모아다가 봉사를 하는 모습에 동참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절의 스님도 봉사자셨다. 그 절에서 쌀과 돈 나오는 것, 농사 지은 것 해서 봉사활동을 이끌게 됐다”는 것이 홍 회장의 말이다.

한때 자원복지회의 회원은 1450명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는 640명으로 많이 줄었다. 많이 돌아가시고 몸이 불편해서 못 나오신다고 했다.

천안시 자원복지회는 해마다 가을이면 ‘고구마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는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 홍 회장 소유의 체험장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이웃들과 나누고 있다. 그동안 축제를 통해 전달된 고구마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지역의 유치원과 양로원, 정신요양원, 사회복지단체는 물론 수년 전부터는 서울과 인천지역 쪽방촌까지 고구마를 수확하며 무료로 가져가는 혜택을 누렸다.

▲ '2016년 국민추천포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홍수영 회장이 천안시 자원복지회 임원 및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 위부터(시계방향) 김철규 자원복지회 총무, 이점님 자원복지회 재무, 홍수영 회장, 이점분 자원복지회 여성회원 감사, 이영일 씨, 홍 회장의 배우자 전대숙 씨, 아들 홍성용 씨, 손자 홍민성 군, 홍현성 군. 홍수영 회장 제공
◆ 국가원로회 위원에 대통령 표창까지


이렇게 묵묵히 봉사활동을 수행하던 홍 회장에게 2008년 초 (사)국가원로회(상임의장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 위원으로 추천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홍 회장의 봉사활동을 눈여겨 본 정진호 국가원로회 위원이 추천한 것이다. 학술적이나 공직에서 그다지 뛰어난 활동을 하지 않았던 홍 회장이 오로지 봉사활동의 공로를 인정 받아 국가원로로 들어가게 됐다. “국가원로에 계신 한 어른께서 제가 하는 봉사를 알고 속속들이 계셨습니다. 이후 다른 원로들께서도 제가 태어나서 오직 봉사의 길을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홍 회장은 그동안의 봉사활동으로 각종 표창패나 감사패를 수도 없이 받았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기관, 지자체 장, 사회복지단체나 후원이관 등에서 수여한 것이다. 천안 성환의 자원복지회에는 홍 회장이 받은 감사패 등이 진열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러다 홍수영 회장은 ‘2016년 국민추천포상’의 대통령 표창 수상자로까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통령 상은 감히 생각 조차도 못했습니다. 봉사라는 길이 좋아서 해 왔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은 몰랐던거죠.”

◆ 홍 회장이 생각하는 참된 봉사는

홍 회장은 현재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기부단체 등의 후원금 횡령 등의 사건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참된 봉사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후원품이나 현금을 전달하는 봉사는 후원 대상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홍 회장은 그동안 자신이 후원하기 위한 단체나 기관 등을 찾을 때 1주일 전 사전답사를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사전 답사는 시설에 있는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한 차원이다. “복지시설에 방문을 한다면 어떻게 방문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좋게 해줄까, 애들이 미소를 짓게 해 줄 것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서 봉사를 한다면 그들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자연스레 전달됩니다”라고 홍 회장은 말했다.

그는 후원에 있어 금전관계는 절대 안 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금전 관계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돈이 없던 사람이 여러 경로를 통해 갑자기 많은 금액을 받게 되면 허황된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금전을 전달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홍 회장은 설명했다.

◆ 따뜻한 손으로 꼭 잡아주세요

홍 회장이 바라보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식생활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풍족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홍 회장은 아직도 고루게 풍족하지 못하고 배를 곯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홍 회장은 수년 전부터 쪽방촌이나 여건이 좋지 못한 기관·단체들을 직접 찾고 있다. 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결과 아직은 후원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홍 회장은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꼭 전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따뜻한 손으로 꼭 잡아주세요.’. 그가 창작한 글귀다. 그는 이 말을 많은 곳에 전파해 모두가 행복하게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한다. “다른 좋은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지금은 고향에서 병하나 앓지 않고 친구나 지인들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좋고 즐겁습니다. 남은 여생도 이곳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데 매진할 생각입니다.”

천안=이재범 기자 news7804@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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