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시론]

"너무 아쉽지. 동네는 옛 모습을 잃어가고. 뭐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야 뭐 특별히 변하는 게 있어. 농사지며 사는 거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

지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고향인 음성군 원남면 행치마을 즉, 윗행태는 성역화 공사로 한창이다. 허물어진 반기문 생가는 복원했고, 위로 작은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뒷산 언저리에는 유엔과 참여국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기념관 위에는 또 다른 대규모 기념관이 한창 공사 중이다.

행치마을은 한남금북의 품안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의 남쪽은 백두산에서 발원한 민족정기가 한남금북정맥을 통해 흐르고, 북쪽은 그 지맥이 팔을 벌려 마을을 감싸 안았다. 마을 뒤 서쪽은 510m의 큰산이 우뚝 솟아 하늘과 땅의 기운을 하나로 모으는 형국이다.

동쪽은 원남뜰의 황금벌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마을의 뒷산인 큰산은 삼신(天神, 地神, 明神)이 살았던 곳이라 해 삼신산(三神山), 수번의 난리 통에도 본 마을 사람들은 다치거나 희생된 사람이 없었던 곳이라 해 보덕산(普德山), 외적의 침입이 있을 적마다 봉화불을 피워 서로의 연락을 취했던 곳이라 하여 봉화뚝이라 부르기도 한다. 큰산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성스런 곳이자 삶터였던 것이다.

이 마을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곳에서 태어난 반기문 씨가 유엔사무총장이 되면서 부터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엔사무총장이 되면서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 모여 들기 시작했다. 조용한 농촌마을에 사람이 몰리면서 그들을 위한 공사가 진행됐다. 생가복원, 기념관, 연못, 주차장, 공원 등이 조성되면서 최고로 기뻐하고 환영했던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던 마을의 추억은 하나둘씩 벗겨졌다. 마을은 성역화가 됐다.

"어릴 적에는 몰랐지. 여기 안 살았으니까? 커서 유명해져서 몇 번 본거지. 여기 몇 번 왔어." 삼신산의 지기를 받고 태어나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큰사람이 되어 돌아온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 살지 않고, 그의 명성만이 마을의 옛 정취를 바꾸고 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에는 충북의 남과 북을 잇는 행치재와 한금령이라는 두 고개가 나란히 지나간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흘러오던 민족정기와 생태이동통로 또한 사람의 이동마저 차단된 공간이다.

"나 어릴 적에는 마을에서 석산이 있는 행치를 넘어 증평으로 갔지요. 근데 1990년대 들어 4차선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한금령 휴게소가 생겼고, 사람들이 한금령이라 부르기 시작했지요."

산업화와 유명인이 나타나면서 마을은 급변하기 시작했고 옛 모습과 정취는 마을 사람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게 됐다. 지금은 녹색 농촌마을 조성과 함께 성역화 돼 가는 새로운 마을과 그들의 기운을 받으러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이 마을의 주인공이 되어 가고 있다.

마을과 산줄기는 우리의 신앙이자 삶터고 놀이터이다. 그곳은 자연과 사람이 서로 부둥켜 함께 노는 공간이자 추억을 공유하는 통로이다. 녹색 농촌마을 조성은 옛 기억을 되살리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마을의 옛 모습을 찾고 끊어진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익히고 지키며, 새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온고지신 (溫故知新)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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