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서구청장
[화요글밭]

‘음서제도(蔭敍制度)’는 고려 시대는 5품 이상 문벌 귀족, 조선시대는 2품 이상 관리 자녀를 무시험으로 관리에 채용한 제도다.

현재 서울의 한 사립 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10여년 전 엮은 한 책의 요약본에 따르면 맨 마지막에 ‘고려 시대보다 조선 시대가 더 능력 위주의 과거 제도를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마 특채 조건이 고려시대 5품에서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으로 강화됐다는 사실을 나름대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문벌귀족사회였던 고려시대는 음서제도와 함께 5품 이상 관리에게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토지인 공음전이라는 특권도 있었다.

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정치적 특별 채용인 음세제도, 경제적 세습제도인 공음전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산업통산부 산하 공공기관인 강원랜드는 2012년 신입 직원을 채용하면서 정재계 등 유력인사로부터 267명의 인사 청탁을 받았고, 이 가운데 250여명을 최종 합격시켰다.

이듬해까지 2년간 걸쳐 채용된 518명 중 95%인 493명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채용됐다고 한다. 청탁자 중에는 현 제1야당 의원 두 명도 들어있는데 이들 둘이 청탁한 이만 50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탁 과정에서 강원랜드는 전형기준을 조작한 의혹까지 받고 있다.

강원랜드로 다시 세상에 드러난 공기업 채용비리는 가스안전공사, 한국석유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디자인진흥원 등 여러 산하 기관으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급기야 최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공기관 채용 비리와 관련해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취업과 창업에 있어 과거보다 현저히 기회가 줄어 든 지금 젊은 세대에게 있어 안정된 일자리인 공기업은 꿈의 직장이다.

청탁 게이트가 사실이라면 강원랜드 공채 경쟁률이 약 10대 1가량이었으니 4600여명의 응시자는 들러리였던 셈이다.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성스레 지원 서류를 접수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갖춰 입고 면접장에 들어섰을 것이다. 지금 이들의 상실감은 짐작할 수 없다.

젊은 세대는 우리의 미래다. 젊은 세대가 희망을 잃으면 미래를 잃는 것이다. 오늘 기성세대는 청년에게 ‘젊은 너희들이 무한도전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당차게 열어가라’며 희망고문의 굴레만 메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짐을 지우기 이전에 납득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의 문부터 만들어줘야 하는 게 기성세대의 첫 번째 의무다.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에게 공정한 경쟁을 거치게 해주는 것이 두 번째 할 일이다. 그래야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반칙과 특권은 우리가 반드시 없애야할 가장 큰 적폐다. 정치적 고려, 사회통합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음서제도를 5품에서 2품으로 강화하듯 서서히 고칠 단계적인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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