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일분 일초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활 중인 승준이에게 쏠렸고 승희는 그 속에서 웃음을 잃어갔다. 오빠 승준이가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해야되면서 가족은 경제적인 문제를 둘러싼 지루한 싸움에 서서히 지쳐갔다. 그리고 단지 돈이 없다는 건 아직 어린 승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이유가 됐다.
어머니 선희 씨는 수년전 승준이 치료비에 도저히 내일이 보이지 않자 한 방송사의 후원 모금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카메라 화면에는 누워있는 승준이의 얼굴, 곁에서 승준이를 닦아주는 어머니, 그리고 승희의 얼굴도 빠짐없이 담겼다. 당시 승희는 신학기, 친구들을 한창 사귀려고 할 때였다. 방송이 나가고 모아진 후원금으로 승준이네 가족은 한동안 치료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불안한 행복이자 어쩌면 악몽같은 생활이 시작되게 된 단초였다. 어느날부터 승희 곁에는 친구들이 오지 않았고 먼저 다가가려해도 다들 멀찍이 떨어졌다.
어머니 선희 씨는 “(방송을 본)부모들 사이에서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얘기가 돌았던 것 같다”며 “승준이는 단지 못움직이는 희귀병을 앓고 있을 뿐이고, 우리 아이들은 절대 불쌍하거나 나쁜 아이들이 아닌데 세상은 참 가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승희가 흔들릴세라 그때 이후로 아이와 매일매일을 대화하고 눈을 맞췄다. 다행히 어머니의 진심이 통했는지 승희는 이제 위축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다. 어머니 선희 씨는 요즘 승희를 바라보며 남모를 한숨을 삼키고 있다.
승희가 전국음악경연대회에 나가 피아노 부문 준대상을 타온게 그 이유다. 방과후학교에서 배운 게 다였고 처음으로 나간 대회에서였다. 다른 부모들에게는 단순히 기쁨으로만 다가올 일이건만 승희 씨에게는 부담이 섞여 돌아왔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승준이에게 여전히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있던 데다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면서 승희를 챙기기에는 더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아이의 재능은 언제쯤 가족에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선희 씨는 “남들은 과외선생님을 붙여 없는 재능이라도 만들어준다던데 나는 두각을 보이는 아이에게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해 죄스럽다”고 했다.
<11월 3일자 1면에 3편 계속>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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