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 “친구 집 놀러가지 말라”
동네 사람도 꺼림칙… 자리 피해
어금니 아빠 희귀병 자식 앞세워 의심 피해… 불신사회 골 깊어져

#1.대전 서구에 사는 맞벌이 직장인 정모(41·여) 씨는 최근 9살 난 딸아이를 크게 혼냈다. 자녀가 방과 후 친구집에 놀러갔다 저녁때가 돼서야 귀가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친구와 함께 집에서 숙제를 하고 간식을 먹다 왔다는 딸아이에게 “앞으로 친구 집에는 절대 놀러가지도 말고 친구 부모가 주는 음식은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정 씨는 “어금니 아빠 사건 때문에 딸아이의 친한 친구 부모들 조차 믿질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2.주부 김모(38·여) 씨는 자신의 두 딸에게 잦은 호의를 베푸는 이웃 할아버지가 불편해지고 있다. 김 씨는 “예전 같았으면 ‘동네 어르신들의 예쁨을 받는구나’하며 넘길 일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괜스레 꺼림칙한 마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어금니 아빠’ 사건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23일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5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살인 등 강력범죄는 모두 313건으로 전년 대비 9.6%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로 인해 과거 ‘정(情)’으로 여겨졌던 행위들이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한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 관련 강력사건 발생 시 피해 부모 측이 이웃집을 우선 의심하며 혼선을 빚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로 과거 이웃에 자녀를 맡기거나 위험한 일이 생길 경우 이웃을 찾도록 자녀를 교육하던 세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어금니 아빠 사건의 경우 희귀병을 앓던 아동을 돌보는 평소 모습을 통해 주변의 의심을 피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불신사회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불신사회의 심화가 점차 관계의 폐쇄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연이은 강력사건으로 인해 보수적인 관계만을 선호하는 폐쇄성이 진행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가족 단위 등 소수에게만 관계가 집중되는 폐쇄성이 짙어질수록 오히려 사회 관심을 통한 범죄 예방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봉사활동 등을 통해 낯선 사람과의 벽을 허물려는 노력이 일정부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인희 기자 leeih57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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