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필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 예술감독
[화요글밭]

크리스 에반스 주연의 '비포위고'(before we go)라는 영화가 있다.

이야기는 뉴욕시에 오디션을 보러온 트럼펫 연주가인 한 청년이 우연한 기회에 한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고전적인 내용이다. 극 중에 상대 여성이 청년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왜 오디션을 보러 가지 않으려고 하나요?" 청년은 담담히 대답한다. "음악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 영화의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한참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30년 동안 음악과 같이해 온 필자에게는 큰 물음이 아닐 수 없었다. '음악이 나를 좋아하지 않다니…' 본디 음악은 오선지 위에 무수한 점들로 그려져 있는 표시들이다. 생명도 더 나가 영혼도 없다. 음악을 모르는 문외한이 본다면 재활용에도 쓸 수 없는 한낱 종이일 뿐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작곡가는 오선위에 그냥 무턱대고 점들을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미를 함축한 다양한 암호들로 빽빽하게 오선 위를 색칠하듯 자신의 영혼을 담아놓았다. 대가의 악보를 펼치는 순간 소우주와 같은 경의로움에 말문을 잃을 정도이다. 암호들로 작곡된 악보는 그 다음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야한다. 훌륭한 연주자는 뛰어난 연주 테크닉 이외에 암호로 되어있는 악보를 풀어서 해석 할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과 철학으로 청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한다. 그 후에야 무생물이었던 종이 위의 오선악보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여 음악을 듣는 청중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연인이 되기도 한다.

드디어 음악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이러한 작업들이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30년 동안, 음악에게서 정말 수많은 배신과 좌절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회피하고 도망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부정하려하여도 할 수없는 음악에 대한 짝사랑은 이내 돌아와 음악에 미소를 보내곤 했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음악 앞에서면 마음이 겸허해 진다. 나약한 인간이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 한 없이 작게만 보이는 자아를 발견한 모습이라고나 할까…이러한 인고의 시간들은 어느 순간 필자에게 하나의 큰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은 변화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음악과 친구가 된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는 '만 시간의 법칙' 이라는 구절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누구라도 만 시간 이상 한 분야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그 분야의 천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만 시간을 계산해 보자면 하루에 3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 연습한 것과 같다. 천재 작곡가인 모차르트 역시 6세 때 작곡을 시작하여 만 시간이 지난 21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최고의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협주곡 9번을 작곡하였으며, 리버풀의 별 볼일 없었던 록그룹 비틀즈 역시 하루 8시간씩 일 년에 270일 연주하여 5년 뒤 20세기 최고의 빅 스타로 탄생될 수 있었다. 그러니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들까지도 자신이 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애정과 열정을 쏟아야만 일과 허물없는 친구 관계가 될 수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일에 지치거나 힘들지 않을 수는 없다. 시시 때때로 밀려오는 자괴감의 무게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계속적인 질문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조언을 하고 싶다. 미드라시(Midrash)에 나오는 솔로몬의 일화 중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고 해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결정한 일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 버텨내고 버티면 멀지 않아 반드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영화의 청년처럼 여건이나 환경이 나빠졌다 해서 쉽게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이 길을 조금 먼저가고 있는 선배로서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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