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에서 35% 돌파…소현경 작가, 거짓말 매개로 다양한 인물의 내면 짚어

행복하지 않은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흙수저들의 아우성으로 대기권이 채워지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바뀌었다고 '행복'도 자동으로 동반될까.

KBS 2TV 주말극 '황금빛 내 인생'이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해 시청자들을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며 방송 16회 만에 시청률 35%를 넘어섰다. 50회 중 절반도 안 가 거둔 성적이라, 최근 수년간 방송가 '마의 벽'으로 통한 시청률 40%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직 절정의 근처도 가지 않았으니,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를 찍을 때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 다시 확인한 소현경 작가의 저력

'황금빛 내 인생'은 소재도, 주제도 새로울 건 없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뻔한 소재를 활용하고 돈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인간사 오래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다르다. 지금껏 수많은 드라마가 같은 목적지와 목표를 향해 갔지만, 이번 드라마는 그 목적지를 찾아가는 항해 과정이 다르다. 작가의 저력이다. 소재와 주제가 새롭지 않아도 얼마든지 새로운 드라마가 될 수 있음을 '황금빛 내 인생'은 보여주고 있다.

소현경 작가는 2009년 47.1%로 종영한 SBS TV '찬란한 유산'과 2013년 47.6%로 막을 내린 KBS 2TV '내 딸 서영이'로 주말극 대박 행진을 펼쳤던 주인공이다. 그 사이사이 내놓은 '검사 프린세스' '49일' '투윅스' '두번째 스무살'도 모두 반짝이는 개성을 과시했던 작품이다. 소 작가가 가동하는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새로웠다. 이야기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작가는 그 길을 찾아내는 사람임을 보여줬다.

가난한 엄마가 자기 친자식과 부잣집 자식을 바꿔치기하는 식의 출생의 비밀 스토리도 사극과 시대극에서부터 많이 등장한 소재다. 그러나 '황금빛 내 인생'은 바꿔치기 당한 두 인물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대비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다른 길을 뚫었다.

돈에 치여 살면서 수없이 좌절했으나, 정작 재벌가 신데렐라가 되고 나서는 가시밭길을 걷고만 있는 주인공 서지안(신혜선 분)의 괴로움과 고뇌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보편성을 확장한다.

언제 갚을 수 있을까 싶던 학자금 대출을 한번에 갚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백화점에 가서 3천만원을 쓰고 오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VVIP 신용카드가 손에 쥐어졌지만 서지안은 하루하루 수명이 단축돼가는 느낌 속 불행에 갇혀있다.

처음에는 길러 준 옛 가족 생각에 마음이 아팠고, 이 모든 상황이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 후에는 지옥에 떨어진 듯 몸부림치는 서지안의 모습은 악녀가 잠시 잠깐 흘리는 악어의 눈물이 아니기에 공감대를 넓힌다.

출생의 비밀 스토리에 으레 출몰하는 뻔뻔한 악녀 대신 애면글면 성실하고 열심히 '노오력'하며 살아온 똑똑하고 착한 흙수저 서지안이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설상가상, 진퇴양난의 상황에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는 막장 없이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 등장인물 모두의 내면 두루 만져

'황금빛 내 인생'의 등장인물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서지안의 엄마(김혜옥)가 평생 고생만 한 딸을 재벌가 친딸로 바꿔치기한 게 가장 큰 거짓말이지만, 그 외 인물들도 모두 자신만의 거짓말을 안고 산다.

서지안의 아빠(천호진)는 공사판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음에도 다른 일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고, 서지안의 오빠(이태성)는 오래 사귄 연인이 있음에도 집안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결혼 생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서지안의 남동생(신현수)은 공부 대신 사업 할 생각에 아르바이트하면서도 대입 학원에 다닌다고 가족을 속이고 있다.

재벌가도 거짓말을 한다. 최도경(박시후)은 교통사고로 인해 악연으로 얽혔던 서지안이 얼마 후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자신의 여동생이 돼 나타나자 부모 앞에서 서지안을 처음 본 것처럼 행세한다.

음대생인 최도경의 막내 여동생(이다인)은 종종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고 오지만 부모에게는 연습하느라 늦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최도경의 이모(전수경)는 서지안의 정체를 밖으로 흘렸음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한다.

또 베트남 현지처를 두고 있는 사업가와 이를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하는 아내, 첫사랑을 못 잊어 지금껏 독신으로 살았으면서도 첫사랑과 재회하자 유부남 행세를 하는 빵집 사장 등도 있다.

소 작가는 거짓말을 매개로 이러한 다양한 인물의 처지와 내면을 두루 만지면서 서지안을 옥죄고 있는 거짓말이 어쩌면 누구나의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짚는 동시에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한껏 활용해 '황금빛 내 인생'의 극성을 끌어올린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예기간을 달라는 서지안과 그에 동조할 수밖에 없게 된 최도경의 상황을 억지스럽지 않게 전개하면서 긴장감과 스릴을 강화한다.

하지만 소 작가는 이 긴장감과 스릴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끝내지 않는다. 서지안에게 주어진 유예기간은 최도경이 서지안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고 있으며, 동시에 이 드라마의 멜로를 순항하게 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pretty@yna.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