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1984' 공연 장면[국립극단 제공]
▲ 연극 '1984' 공연 장면[국립극단 제공]
익숙한 원작소설에 새로운 이야기 더한 연극 '1984'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국립극단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1984'는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1984'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영국 극작가 겸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와 덩컨 맥밀런의 각색본을 바탕으로 한태숙이 연출한 연극은 원작에는 없는 '북클럽'을 설정해 미래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액자식 형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더했다.

미래의 어느 시점 '북클럽' 회원들이 모여 책의 내용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이들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참석자 중에는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도 있다. 토론에는 끼지 않은 채 뭔가 멍하니 생각하는 윈스턴. 토론이 마무리될 무렵 갑자기 불이 꺼지고 윈스턴이 쓰러지면서 연극은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간다.

'빅브라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며 지배하는 사회에서 체제에 불만을 키워가던 윈스턴. 그에게 오브라이언이 나타난다. 오브라이언은 당의 고위 간부지만 반정부단체인 '형제단'을 비밀스럽게 소개하며 윈스턴을 형제단으로 이끈다. 그러나 윈스턴은 이내 체포돼 고문을 받게 된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이야기인 만큼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겁고 우울하다. '사상범, 반역자'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소녀나 '2분 증오' 시간이 되자 격렬한 증오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섬뜩하다. 잊힌 과거를 상징하는 노래로 등장하는 영국 전통 동요 '오렌지와 레몬'의 가락은 음울하게 귓가를 맴돌며 공포영화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하이라이트는 정체를 드러낸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고문하는 장면이다. 잔혹한 고문 방식도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전체주의적 당을 비판하는 윈스턴과 윈스턴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오브라이언 두 사람의 대결이 숨막히게 전개된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뭘로 우리를 무너뜨릴 건가'를 물을 때는 극장 객석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다. 이 순간 관객은 윈스턴의 답을 기다리며 동시에 자신의 대답을 생각해보게 된다.

연극은 다시 북클럽 회원들의 토론장으로 돌아와 끝이 난다. 이들이 읽은 책이 뭔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윈스턴이 쓴 일기일 수도, 1984일 수도 있다. 북클럽의 호스트는 "윈스턴 스미스는 존재한 적 없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윈스턴은 토론장에 함께 있다.

미래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이지만 극중 미래와 과거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극중 현실과 환상의 구분도 모호하다. 이런 모호함은 1984의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강하고 센 역할을 많이 했던 연희단거리패의 배우 이승헌이 윈스턴 역을 맡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저음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배우 이문수는 오브라이언 역을 맡아 목소리만큼이나 묵직하게 존재감을 보여준다. 공연은 11월19일까지.

zitrone@yna.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