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

1만8천 신들의 고향 제주…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

신간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제주도에도 그리스, 로마와 같은 신화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알고 보면 제주는 수많은 신이 태어나서 자라고 좌정한 신들의 고향이다. 사냥하고 농사짓고 사랑하고 질투도 하는 제주도의 신들은 제우스와 헤라처럼 그들을 믿고 의지해온 토착민들을 빼닮았다.

흔히 제주도를 '절 오백, 당 오백'이라고 한다는데, 신을 모신 신당(神堂)이나 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제주도 당신(堂神)들의 원조는 현지 사람들이 '백주또'라고 부르는 여신인 금백주와 남편 소천국이다.

금백주는 강남천자국 백모래밭에서 솟아난 농경신으로 오곡의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뭍에서 건너왔다. 소천국은 제주섬에서 솟아난 사냥신으로 한라산에서 사냥하며 떠돌다 금백주를 만나 부부가 됐다. 둘은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았고 손자는 삼백일흔여덟으로 벌어졌는데, 자손들이 퍼져서 각 마을의 당신이 됐다.

모신(母神) 백주또가 좌정한 구좌읍 송당리는 제주 당 신앙의 성지다. 송당 마을의 신화라 할 '송당본풀이'는 길게 이어진다.

소천국은 밭을 갈다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소를 잡아먹는 바람에 이혼을 당한다. 그 뒤로 버릇이 없다 해 무쇠 상자에 담아 동해로 던져버린 여섯 번째 아들 소국성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이 펼쳐진다.

신간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펴냄)는 송당리를 비롯해 와산리, 애월, 금악리, 난산리, 월정리, 낙천과 금능리 등 제주의 신화가 깃든 아름다운 마을과 신당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소개한다.

걔 중에는 어엿한 당집이 지어진 곳이 있지만 오래된 팽나무 한그루 혹은 커다란 바위 한덩이, 어떤 곳은 그마저도 없는 신당이 있다는데, 울림은 이런 소박한 신당이 더 크단다.

올레는 큰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돌담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일컫는 제주말이다. 당올레는 집이 아니라 당으로 이어지니,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인 셈이다.

저자는 제주에서 국어교사를 지낸 여연과 민속학자인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으로, 심방(제주도 무당)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제주 신들의 내력(당본풀이) 속에서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읽어낸다.

"제주의 신당은 마을 수호신인 토주관(土主官)을 모시고 있으며 설촌(設村)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본향당을 중심으로, 아이를 낳고 건강하게 기르도록 돌봐주는 일뤠당, 처녀의 순결을 지켜주는 여드렛당, 사냥하던 사람들이 다니던 신산당, 해녀와 어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바다밭을 지켜주는 돈짓당(갯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미 넘치는 각양각색의 신들은 우리가 몰랐던 제주 사람들의 예민한 종교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는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해 척박한 환경에 맞서오면서 필사적으로 기댈 곳을 찾았던, 그래서 "나무 하나 돌 하나에서도 신성(神聖)을 느끼고 숭배하며 힘과 위안을 얻고자 했던" 제주민들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제주 사람들은 날마다 "칠성판(관속에 까는 널조각)을 등에 지고 바다로 나가야 했던 어부들과 잠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뤠당신은 제주도 어느 지역에나 있는 농경신이자 산육신(産育神)이고, 치병신(治病神)인데, 특히 피부병을 관장한다. 제주의 덥고 습한 기후와 풍토로 인한 피부병이 일상의 큰 위험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의 신들은 체면치레도 않는 소박한 모습이다. 뭍에선 신앙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잡귀인 도깨비도, 뱀도 제주에선 신으로 모셔진다.

제주도 신화에는 타지에서 온 농사를 관장하는 여신과 사냥을 하는 토착신이 맺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주도권은 여신이 쥔다.

책은 이 같은 신화 속 서사를 외부 이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수렵을 주로 하던 토착민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고 농경 정착사회로 재편돼온 제주도 사회상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320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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