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시론]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원자력발전소'와 '핵발전소' 중에서 무엇이 더 맞는 명칭인가를 다룬 기사를 봤다. 원자력이라는 용어가 원자 구조를 잘 모르던 원자력 개발 초기에 사용된 것이며, 원자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핵발전소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반원자력 진영에서 흔히 하는 주장이기도 한데,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원자력, 원자력발전소 등이 공식적인 용어다. 그러나 반원자력 진영에서는 핵에너지, 핵발전소, 핵폐기물 등 '핵'을 강조하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핵이라는 말이 원자력보다 더 공포감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원자력계에서는 핵무기를 연상시키는 핵을 강조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원자력을 어떻게 지칭하는가만 보더라도 원자력에 대한 입장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원자력은 우리나라에서 임의로 만들어낸 용어가 아니다. 원자폭탄(Atomic Bomb),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1953년 유엔총회 연설 제목인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1957년 설립된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영어권에서 Atomic Energy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일본과 한국에서 이를 원자력으로 번역해 사용한 것이다.

원자력은 크게 보면 원자에서 나오고, 더 자세히 보면 원자핵에서 나온다. 따라서 굳이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면 '원자핵에너지'(Atomic Nuclear Energy)가 될 것이다. 국내 모 대학의 관련학과가 '원자핵공학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어권에서 명칭을 단순화한 Nuclear Energy가 주로 사용되면서 국내에서도 핵에너지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국 원자력과 핵에너지, 둘 다 과학적으로 적확한 용어는 아니다. 원자력은 원자핵을 직접 가리키지 않으므로 엄밀성이 떨어지고, 핵은 원자핵 외에도 세포의 핵, 지구의 핵, 씨앗의 핵 등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를 핵발전소라고 부르는 것까지야 개인의 자유일 수 있지만, 핵발전소라는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용어의 적확성을 정말 중시한다면 오히려 '원자핵발전소'를 주장하는 것이 맞다. 또한 원자력에 벡터량을 가리키는 '력'이 들어간 것이 오류라는 주장도 있는데, 수력, 풍력, 속력, 축력, 인력(人力) 등의 용어만 보더라도 근거가 빈약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이나 원자력발전소라는 용어가 반원자력 운동이 국내에서 시작되기 훨씬 전인 1950년대부터 사용되면서 이미 토착화됐다. 더욱이 원자력계에서 핵발전소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평화적 목적을 위한 원자력 발전이 파괴적인 핵무기와 함께 묶이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원자력인들의 의지까지 폄훼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올해 노벨평화상이 '핵무기폐지국제운동'(ICAN)에 돌아갔다. 언론기사들은 대개 반핵단체가 수상하게 됐다는 제목을 달았고, 많은 독자들은 아마도 원자력발전 반대 단체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실은 핵무기 폐지 운동 단체인데도 말이다. 원자력을 '핵'이라는 자극적인 한 글자로 표현하는데 따른 문제점과 이에 대한 원자력계의 우려가 타당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개인이나 단체는 원자력을 좋아하면 원자력발전소로, 핵을 좋아하면 핵발전소로 사용하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정부 등 공식기구와 언론에서는 공식 용어인 원자력과 원자력발전소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