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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잃은 인간들이 절박하게 짖는다. '멍멍, 멍멍'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2017년 10월 12일 목요일 제23면     승인시간 : 2017년 10월 11일 18시 42분
[충청로]

▶개(犬)의 조상은 늑대다. 소설 같은 얘기지만 팩트다. 늑대(티베트 승냥이)가 개로 진화하는데 자그마치 1000만년이 걸렸다. 그 억겁의 세월 동안 늑대의 발톱은 퇴화됐고 사납던 성정은 꼬리를 내렸다. 늑대와 개의 차이는 길들여졌느냐, 길들여지지 않았느냐의 관점에서 달라진다. 늑대가 개가 된 것도, 개가 가축이 된 것도 순전히 사람 탓이다. 1만5000년 전 '동구 밖'에서 '집안'으로 들어온 개는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 본색이 가축임에도 가축 지키는 일에 동원됐고 때로는 사냥견, 투견(鬪犬), 식견(食犬)의 운명을 살았다. 더더구나 인간 탐욕에 의해 '흘레'를 강요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늑대는 교활하고 개는 충직하다. 야성의 늑대는 멀리 사람 곁을 떠났고 내성의 개는 사람과 더 가까워졌다. 늑대가 음흉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녀석의 사냥술에서 연유한다. 늑대는 먹잇감 근처에 목동이 있으면 멀리서 잠자코 지켜만 본다. 이는 사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양치기가 한눈을 팔면 늑대는 가장 연약한 먹잇감을 사냥한다. 특히 떼를 지어 공격할 때는 몇 놈이 목동을 교란시키고 다른 한 놈이 먹이를 낚아챈다. 식욕이 왕성해 송아지나 염소 1마리쯤은 앉은자리에서 거뜬히 먹어치운다. 그러니 5~6일간 굶어도 살 수 있다. 식욕과 반대로 ‘남자는 늑대’라는 정욕의 말은 틀렸다. 신통방통하게도 녀석은 일부일처제다.

▶견공(犬公)이 애완을 벗어나 반려(companion animal)로 불리고 있다. 애완은 장난감이고 반려는 동반자다. 우리나라 다섯 명중 한명은 반려동물을 키운다. 전체로 보면 1000만명이니 사람 반(半) 개 반(半)이다. 반려 견공이 많아진다는 의미는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삶의 단짝이 없어졌다는 슬픈 징조다. 데면데면한 가족보다는 말귀를 알아듣는 개가 낫다는 역설의 증거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을 한다. 개는 짖는다. 그러나 짖는 개보다 사람이 말귀를 더 못 알아듣는 세상이니 개가 반려가 된 것이다. 개는 충성스럽다. 듣기 싫다고 귀 막지 않으며, 귀찮다고 외면하지 않는다. 그저 반려가 시키는 대로 따박따박 복종한다. 견공의 매력은 바로 '함께, 같은 길'을 걷는다는데 있다.

▶다시 말하지만 개가 '개집'에서 '사람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1만 5000년이 걸렸다. 짐승에서 가축으로, 가축에서 반려견으로 신분상승이 이뤄졌으나 기적은 아니다.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을 먹으며 가족의 '법'을 대대손손 익힌 덕분이다. 이제 견공은 찬밥에 물을 말아먹지 않는다. 개차반은 없다. 식당에 가고 호텔과 병원, 미용실도 간다. 개를 욕하면 사람이 욕을 먹는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왜 반려를 잃어가고 있는지 아는가? 세상이 개판이고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인간 반려자를 잃고, 반려견을 찾는 시대, 인간들이 절박하게 짖는다. '멍멍, 멍멍~'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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