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속 사연]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난닝구. 속옷 가운데 윗옷을 가리킨다. 주로 남성용이며 흰색이다. "내세울만한 체육복이 없던 1960~1970년대 운동회나 마라톤 때 '난닝구' 차림으로 달리기를 했었지." "열대야를 피하려는 안간힘은 안쓰럽지만 누리끼리하고 어깨 끈이 비대칭적으로 늘어진 '난닝구' 바람은 정말 볼썽사납지."

하지만 '난닝구'는 순우리말이 아니다. 외래어 '러닝셔츠(Running shirts)'의 변형이다. 어찌하여 이 '러닝셔츠'가 '난닝구'로 둔갑했는가. 우리에 비해 영어 발음이 정확하지 못해 빚어낸 일본인의 발음 때문이다. 일본인은 외국어(영어)의 보통명사를 표현할 때 다소 제멋대로다. 두 단어로 된 경우 두 번째 단어를 생략하고(담배 한 보루: board box서 유래: box 생략, board서 'd' 묵음 시키고 '보루'라 함), 일종의 연음(連音)법칙에 따른다. 이 특성에 의거해 일단 'Shirts'는 버린다. 문제는 'Running'을 어떻게 표기하느냐이다. 'Running'은 '러언(Run)'과 '잉(ing)'이 합친 동명사다. 우리는 영어 사용국 사람처럼 '러닝'으로 발음할 수 있지만 일본인은 그리 쉽지 않다. 'Run'은 영어식으로 '라안'으로 발음이 가능하지만 'ning' 어떻게 발음할 것인가. 그냥 '닝'하면 되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ing'의 'g'는 크게 'ㅈ(general)', 'ㄱ(good)', 'ㅇ'(long)'으로 발음된다. 이 가운데 일본인은 마지막 'ㄱ'를 택했다. 그러니까 '라안'과 '닝그'가 합해져 '라안닝그'가 되어야 했지만 한 번 더 변형, '닝그'를 '닝구'로 발음했다. 여기에 한 번 더 둔갑했다. 혀 앞부분이 입천장에 붙지 않고 목안으로 구부려하는 'Running'의 'R' 발음도 힘들어 'R(ㄹ)'를 'N(ㄴ)'으로 바꿨다. 이래서 '난닝구'가 탄생했다. 우리는 이 말을 차용했다.

요즘 속옷의 보통명사가 된 '메리야스'가 바로 '난닝구'다. 하지만 '메리야스'도 번지수가 틀리긴 마찬가지다. '메리야스'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표현된 개화기에는 속옷이 아닌 양말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 '메리야스'가 부지불식간에 '난닝구'를 제치고 속옷 명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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