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투데이포럼]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황금 들녘이 바람결에 춤춘다. 담장을 넘어온 애호박이 앙증맞다. 농부들은 풍년 수확을 기대하며 마무리 손질이 한창이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들은 단풍 옷을 갈아입으려 분주하다. 겹겹의 구름이 바람결 따라 이동하며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의 속계와 선계를 어우러지게 조각한다. 실바람이 피부에 입맞춤한다. 함께 걷는 아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콧노래를 부른다. 빨갛게 익어가는 대추가 이 모든 풍경을 온몸으로 담아내며 우리를 환영한다. 황금연휴! 풍요로운 벌판과 마을 숲이 어우러진 속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속리산 둘레길은 우리나라 5대 명산 트레킹 코스로, 풍요와 미학의 길이다. 마을 간을 잇는 고개와 고삿길 그리고 물길을 선으로 연결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흐르는 곳이다. 백두대간의 중심이자 기암절벽이 꽃으로 피어난 속리산에 기대어 자리 잡은 보은·괴산·문경·상주를 연결한 총 200여㎞로, 그 중 보은길은 약 60㎞다.

둘레길의 시작점은 임실마을이다. 임실마을은 작은 도랑 하나를 경계로 충북과 경북으로 나뉜다. 한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집은 20분 걸어 보은의 적암초등학교로, 옆집은 40~50분 걸어 경북 상주의 평온초등학교로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휴대폰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옆집에 전화를 걸 때 시외 요금이 적용되기도 했다.

이곳에서 적암·갈평·수문 숲길과 마을길을 이어 걷다보면 동양최대 민중 혁명으로 일컫는 동학농민혁명 취회지인 장안면 개안리에 다다른다. 구인·오창 들녘을 걸어 대궐터(세조 머무른 행궁터)를 지나면 구비구비 열두 구비의 고개 말티재다. 이곳은 고려태조 왕건(王建)이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을 만나러 속리산에 가다가 험하고 가파른 고개를 넘기 위해 박석을 깔아 만든 것이 시초가 됐고, 조선 세조가 박석길을 재정비하고 말을 타고 고개를 넘었으니 마현박석(馬峴薄石), 말티라 불린다. 속리산의 관문이자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한강과 금강을 가르는 산줄기)의 가장 중요한 고개인 말티는 민주적인 문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한글 창제의 주역인 신미대사 또한 넘나들던 고개다.

말티에서 솔향기 가득 담고 내려서면 달천이다. 달천 들녘을 따라 걷다보면 속리산 연봉이 구름에 가리어진다. 달천과 헤어진 둘레길은 장갑·신정·대원을 지나 최치원선생의 전설이 깃든 금단산(金丹山, 767m) 신선길을 넘어 괴산으로 향한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묻어있는 이곳에서 '대추익는 보은! 가을을 걷다'를 주제로 10월 21일 오전 10시 '제2회 속리산 둘레길 걷기 행사'를 개최한다. 충북알프스자연휴양림에서 (구)북암초까지 '한걸음 두걸음 느림의 미학을 간직하면서 자아를 찾아나서는 길!'을 떠난다. 숲과 마을이야기, 대추이야기를 덤으로 들을 수 있다. 길을 걷다보면 가을 속에 묻히고 삶의 향기에 푹 빠질 것이다. ㈔속리산둘레길이 주최하고 보은군, 트레킹지원센터에서 후원하는 이번 걷기행사는 완주자 500명에 한정해 기념품을 제공하며, 지역 농·특산물을 경품으로 준비한다. 또한 떡과 생수, 잔치국수 등 풍요의 계절답게 넉넉함을 담고 있다. 생존배낭 세트는 특별 이벤트를 통해 나눠 줄 예정이다. 걷기행사가 끝나고 보은 벳들공원에서 진행하는 대추축제장에 들리면 더욱 풍성한 가을을 맛볼 수 있다. 걷기행사를 통해 자연과 더불어 하나 되는 단풍옷을 입어보길 '대추 한 알'의 마음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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