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오 청주시 서원구청장
[화요글밭]

십여 년 전,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주관하는 무역상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역의 기업인들과 함께 캐나다 출장을 다녀 온 적이 있다. 그 때, 행사장에서 무역 상담에 참여한 현지기업인들 중 의류업에 종사한다는 40대 초반의 한국인 여성을 우연히 만났다. 예상치 않게 동포를 만났다는 반가운 마음에 “사업은 잘 돼냐”, “이민생활에 어려움은 없냐”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캐나다는 어떻게 오게 됐느냐고 묻게 됐다.

순간 그녀는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런 반응에 당황했지만 이야기 중간에 나올 수도 없어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는 미안하다며 힘들게 말을 다시 꺼냈다. "아이 때문에 이민을 오게 됐어요. 아이가 장애를 가졌는데 한국에서는 키울 수가 없었어요. 혼자의 몸으로 생계가 막막한데, 딱히 맡길 곳도 없고, 고민 끝에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처분해 캐나다로 왔어요."라는 것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사회적 편견과 따돌림이었다고 고백했다. 아이는 집주변은 물론 학교에서 조차 전염병 환자처럼 취급하며 빈번하게 놀림감이 됐다고 한다.

필자가 현재 상황에 대해 묻자 그녀는 "네, 너무 좋아요. 만족해요. 이민 잘 온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차별받는 것이 없어요. 따돌림 같은 것도 없구요. 수영장도 도서관도 학교도 보통사람들과 똑같이 맘 놓고 다닐 수 있어요. 오히려 장애인이라서 존중 받는 일이 더 많아요. 아이도 너무 행복해 하구요. 사업도 그만저만 하구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 졌다. '내 나라가 내 국민을 버렸구나'라는 마음에 부끄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케케묵은 얘기를 다시 꺼내 들게 된 것은 '서울 어느 구의 특수학교 설치로 인한 주민갈등'이라는 뉴스를 접하고서다. TV화면에 무릎 꿇고 애원하는 학부모의 모습을 보는 순간, 좌절과 절망이 솟구쳤다. 십여 년 전, 느꼈던 그 부끄러움과 아픔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교육기본법’ 제18조(특수교육)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신체적·정신적·지적장애 등으로 특별한 교육적 배려가 필요한 자를 위한 학교를 설립 운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250여만 명의 등록 장애인 중 후천성 장애인이 70%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치매 등으로 인한 60세 이상 노령 장애인이 전체 장애인의 50% 이상(133만 여명)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결국 장애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공동운명체'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를 두고, 지역주민들 앞에서 애원하고 무릎 꿇어야 했나. 그것은 우리가 장애인 보다 더 큰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장애인 편견증(偏見症)'이라는 심각한 마음의 장애다.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특수학교나 노인병원 등과 같은 복지시설 건립에 따른 갈등이 여전하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의 각지에서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특수학교를 필요한 만큼 지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가가 나선다고 이런 일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해답은 하나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장애를 우리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장애인이 되어서야 인생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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