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시선]

한글을 배우기 전에는 / 검정색은 글씨 / 하얀색은 종이/지금은 / 검정색이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신기하다 / 꿈만 같다

충남평생교육진흥원 주관으로 도내 문해교실에서 늦은 나이에 한글공부를 하신 어르신이 직접 쓴 글을 액자에 담은 전시회가 도교육청 현관에서 열렸다. 위 글은 ‘소리’란 제목의 짧은 글이다. 검정색이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는 표현에서 그동안 겪었을 삶의 고달픔과 한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게 된 어르신의 기쁜 마음이 느껴져 한참을 서서 여러 번 읽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는 모든 존재의 의미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 자체가 삶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행위라고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한다.

기초 한글교육은 우리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존재가 살아 숨 쉴 수 있게 집을 짓는 일이다.

모국어인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은 존재의 집이 없는 투명 인간으로 일상적인 학습의 고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맹’이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것을 말한다면 ‘문해’란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글을 읽을 수는 있으나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한글교육을 제대로 받았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한글교육은 글자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문해력을 통해 창의성을 기르는 일이고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를 내는 일이다.

청주교대 엄훈 교수는 그의 저서 ‘학교 속의 문맹자들’에서 한글교육은 단순히 국어교과의 기초교육 의미를 넘어서 모든 교육의 토대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한글을 제대로 해득하지 못하면 다른 교과 능력 뿐 아니라 학습동기 저하, 학교생활 부적응을 초래할 수 있음을 걱정한다. 읽기는 하지만 이해를 못하고 글자만 쫓아가는 아이들이 학교안의 문맹자로 남지 않도록 읽기 위주의 한글교육이 공교육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교육청은 한글을 먼저 익히는 것보다 제때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한글교육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너무 이른 한글교육이 오히려 학교교육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을 만들고 있다.

2015년 초등학교 1학년 한글교육 개선방안을 선도적으로 발표하고 27차시이던 한글교육을 지난해 50차시, 올해는 입학초기 적응교육 및 국어시간을 활용해 82차시로 해마다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알림장 쓰기나 받아쓰기 등을 지양하고, 노래와 놀이 중심의 몸을 이용한 한글교육, 다양한 읽기 전략을 활용한 책 읽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9월말까지 도내 초등학교 1학년 학생 2만 226명을 대상으로 한글 미해득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된 학생 수준에 따라 한글 미해득 또는 초보적 한글 해득 수준으로 진단된 학생에 대해서는 한글 미해득 학생 담임 책임지도제를 운영하고자 한다.

교원은 한글 읽기 부진 실행 연수를 기초, 심화, 전문가 과정으로 나눠 실시하고 한글교육 전문가 과정을 통해 한글교육 역량을 높이는데도 노력하고 있다.

충남교육청의 한글교육은 단순한 문자 교육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오늘은 571돌을 맞는 경사스런 한글날이다. 소설 ‘대지’의 저자 펄 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2013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 되어 세종대왕의 높은 뜻과 업적을 기리고 경축하는 한글날이 올해는 긴 추석 연휴의 맨 끝을 장식하고 있다.

추석 연휴의 맨 끝이 한글날이 아니라 한글날까지 있어서 긴 연휴가 되었음에 감사하며 생각하는 힘을 만들어주는 한글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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