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오제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청주 서원)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38차 아세안의회총회(AIPA)에 대한민국 국회를 대표해 다녀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재난 관리와 초국가적 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 강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폭넓은 대화를 가졌다. 아세안 10여 개 나라 대표를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옵저버 국가 대표들과도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세안은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등 동남아시아 10개 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인구 기준 세계 3위, GDP는 세계 7위의 커다란 단일 시장, 단일 생산기지로서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 만난 아세안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우호적이었고, ODA협력에 대한 감사와 함께 더 많은 경제지원을 요청했다. 대한민국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짝사랑이 느껴졌다.

1989년 대화관계 수립 이후 양자관계는 눈부시게 발전해왔으며, 2007년 FTA 발효 이후 아세안은 우리나라 제2의 교역대상국이 됐다. 2016년 기준 한·아세안 교역액은 1188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교역액의 13%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 300억 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우리기업들의 투자도 매년 급증해 2016년 기준 61억 달러를 투자한 제2의 투자지역이며, 매년 600만 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이 찾는 제1의 방문지이기도 하다. 아세안의 풍부한 자원과 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성장 잠재력 등을 감안할 때 이 모든 교역지표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사회에서 아세안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공약사항으로 "아세안과의 외교를 주변 4강과 유사한 수준의 경제적·정치적·전략적 수준으로 격상하겠다"는 뜻을 공표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에는 역대 정부 최초로 아세안에 특사를 파견함으로써 관계 강화의 첫 걸음을 내디뎠고, 곧이어 아세안+3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아세안 관계를 주변 4대 강국 수준으로 격상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바야흐로 한·아세안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기존 경제교역 중심의 1차적 교류를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는 다차원적 협력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익의 균형을 이루는 공동번영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안보에서 한·아세안과의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고, 아세안 국가들의 만족도가 높은 개발·협력을 확대해 친근하고 편안한 동반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특히, 한류 등 우리 문화에 대한 우호적인 정서를 활용해 국가 간 유대뿐만 아니라 국민 간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미래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1일 부산에서 아세안 문화원이 문을 열었다. 아세안 문화 관련 시설이 국내에 세워지기는 처음이다. 특히 개원을 기념해 '화혼지정'(華婚之情)이라는 주제의 특별 전시회가 별도로 마련됐다. 한·아세안 관계가 부부처럼 깊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긴 건 아닐까?

'포스트차이나' 대안 찾기가 절실한 지금, 6억 4000만 명의 인구와 2조 6000억 달러의 거대 시장을 가진 아세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과 아세안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백년해로'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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