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대전시립미술관장
[목요세평]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라는 말처럼 사람이 살아온 인생은 그 얼굴에 오롯이 남는다고 한다.

미술사에서도 많은 작가들이 자화상으로 삶의 여정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는 얼굴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작가 중 한명은 빈센트 반 고흐이다.

짧은 생애였지만 힘들고 고단했던 그의 삶이 그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죽기 전 그린 자화상을 보노라면 지끈거리는 편두통을 나타내듯 꿈틀거리는 소용돌이에 넋을 잃게 된다. 그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심 같은 모습도 보인다.

소용돌이치는 중심에 바위같이 서있는 인상을 주는 그림이다.

배경의 청회색은 인물의 공격성을 약화 시키는 듯 보이지만, 날카로운 턱선과 붉은색 턱수염은 방심하지 않은 투사의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평정심과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파도에 휩쓸릴 듯한 위험 사이의 갈등을 보여 준다. 고흐는 생전에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친구 고갱과의 갈등과 불화로 인해 정신질환을 얻어 요양소에서 생을 마감한 불운한 작가였다. 고흐의 광기에 가까운 독창적인 창작력은 고난에서 비롯되었다는 논쟁의 화두가 된 자화상이기도 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화상을 꼽는다면 국보 240호로 지정받은 윤두서의 자화상일 것이다. 수묵 담채로 세월의 풍파에 탈색되어 섬세함이 훼손된 작품이지만 느껴지는 생동감과 파격적인 생략은 보는 이를 섬뜩함을 느낄 정도의 긴장감을 갖게 한다. 살집이 있는 얼굴은 불그스레한 홍조를 띠었고, 송충이 모양의 눈썹과 매서운 눈초리는 살짝 올라갔다. 복스럽게 생긴 코와 굳게 다문 두툼한 입술은 고집스러운 성격을 알려주는 듯하다. 길게 늘어진 수염 또한 인상적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상체가 없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현존하는 당대의 자화상 실물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윤두서가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일까? 아니면 그의 실수 또는 그리다만 미완성 작일까? 파격을 넘어 매우 도전적인 표정의 자화상은 오늘날 높은 예술성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는 순탄치만 않았던 가문의 내력과 윤두서 자신의 가정사 그리고 암울한 조선의 현실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굳은 의지와 다짐이 함축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작가들이 자화상을 소재로 작품을 하고 있다. 그들이 그려내는 얼굴들 속에는 인생사와 세상사를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 많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의 얼굴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나의 삶을 이루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얼굴에 나의 생활습관과 가치관까지 고스란히 녹아져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작가들처럼 삶을 반추하며 자화상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얼굴과 감추어진 내면의 얼굴이 서로 다르지는 않는지 돌아보며 살아야한다. 10년 뒤에 마주할 그간의 삶이 배어있는 나의 얼굴이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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