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청주시 흥덕구 여성가족팀장
[시선]

"엄마! 나 방과 후 수업 가야금 배우고 싶어, 신청해도 돼요?" 10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의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워킹 맘인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쳤고, 딸은 필자의 퇴근시간까지 영수학원을 비롯해, 논술, 피아노, 미술, 합기도, 바둑, 웅변, 농구 등 '학원 뺑뺑이'를 돌았다. 그 과정에서 혹시나 아이에게 맞는 적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모든 걸 단기간의 경험으로 끝냈다.

그랬던 딸이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고 제 입으로 꺼냈다. 끈기가 부족했던 아이의 성격을 아는 터라 '또 6개월짜리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딸이 5학년이 되자 가야금을 본격적으로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생 입에서 '전공'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악이라는 것이 널리 대중적이지도 않고 더군다나 서양음악과 달리 국악 관련 대학이 훨씬 적은 현재의 상황과 재정적인 문제 그리고 전공을 해서 앞으로 무얼 해서 먹고사나 등의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오롯이 딸의 의견을 전격 수용해 전공을 허락했다.

겁도 없이 허락한 필자에게 시련은 그때부터였다. 딸의 실력 향상을 위해 선생님께서는 대회에 자주 내보냈고 그때마다 운전기사 노릇과 함께 딸 간식 챙기고 한복 챙기고 온종일 기다리고, 또 스케줄이 맞지 않을 땐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부탁하며 겨우겨우 시간을 채웠다. 가장 마음 아픈 건 다른 엄마들처럼 대회나 연습 때마다 자주 얼굴을 내밀기 힘들었고 그것이 아이의 기를 죽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딸의 스승이신 송정언 선생님께서 아이를 설득하고 다독여 주신 덕분에 딸은 독립적이고 강하고 흔들림 없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그러한 격려 속에 딸은 중·고교를 거치며 여러 대회에 출전해 다수의 입상과 경험을 쌓았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계승해야겠다는 나름의 목적과 의지를 품었다.

예고 2학년 땐 얼떨결에 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독주회도 가졌다.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이 독주회를 갖는다는 것이 드문 일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아직은 국악인이라 칭하기에는 당연히 실력이 부족하고 어린 나이지만 가야금을 대하는 딸의 모습만큼은 참으로 대견하고 믿음직스럽다. 그 덕인지 지난 7월 시립국악단의 '젊은 예인' 협연 오디션에 1학년이지만 당당히 합격해 청주아트홀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조명 받는 무대에 올라 긴장감을 이겨내고 실수 없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 공연을 위해 여름 내내 딸이 쏟은 시간과 땀이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흔히 국격이 높아질수록 그 나라의 전통음악이 발전한다고 한다. 최근 국악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리지만 한편으론 대학에서 취업률 때문에 음악관련 학과를 폐지한다는 소식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전통음악을 계승해 다음 세대에 물려 준다는 것은 현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그들의 공연을 응원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앞으로 우리나라 국악계를 이끌어가기 위해 오늘도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연습하고 있을 '젊은 예인'들에게 온 힘을 다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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